국건위에서 온 메시지 : 공원같은 나라, 정원같은 도시 - 1
[인터뷰] 조세환 대통령 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국토환경디자인분과 위원장조세환 한양대 명예교수는 1973년 한국조경의 정규 조경학과 1회 출신으로 졸업 후 정년할 때까지 조경설계 실무,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연구활동을 하는 등 평생 조경분야에 몸담아 온, 어쩌면 한국조경의 역사를 온몸으로 경험한 사람 중 한 사람이다.
2009~2010년 (사)한국조경학회 회장, (재)환경조경발전재단 이사장직을 수행하며, 열정적으로 헌신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뤄냈다. 그런 사유로 (사)한국전통조경학회, (사)한국조경협회를 비롯한 조경분야 다수의 학·협회 고문으로 추대됐다.
또한, (사)한국정원디자인학회, (사)한국바이오텍경관도시학회 등 관련 학회 창립에도 기여했고,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정규 커리큐럼으로 개설하는 등 평생 조경의 영역을 넓히고, 진화를 이끌려고 노력했다.
2018년 정년 후 그는 약 5년의 시간동안 공식·비공식적으로 외부와 연을 끊고 조경계의 시선에서 멀어졌다. 그러던 그가 최근에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어떤 일이 있었을까? 라펜트에서는 그 동안의 궁금증을 인터뷰를 통해 들어 보고자 했다.
(인터뷰는 총 2회로 나누어 연재)
정년 퇴임 후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정년 후에는 외부활동을 하시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근황이 궁금합니다.
2018년 8월 30일 대학에서 정년하기 전부터 나름 정년 후에 이루고자 할 꿈을 많이 키워놓았습니다. 저작활동을 하고, 평론도 쓰고, 특히 저의 전공인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실천하기 위한 꿈도 꾸어 놓았습니다. 정년 후 제자들과 함께 관련 연구소를 본격적으로 운영해 보자는 것이었지요.
근데 세상에 마음대로 되는 게 없잖아요. 정년 하던 해인 2018년 연초부터 지간신경종이라는 발바닥 병이 생겨, 걷는데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마지막 1학기 동안 강의실에 서 있기 조차 힘든 상태였어요. 물론, 지금 이 시간까지도 여전히 불치병으로 남아 고생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움직이면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데, 걷는 데 어려움이 있으니 의욕이 떨어지더군요. 자연스럽게 모든 외부활동이 멈추고, 고통이 있으니 생활이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치료한답시고 조금의 움직임도 자제하다 보니 근력이 떨어지고, 자연스럽게 관절염 등 또 다른 병이 찾아오더군요. 참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정년을 했다는 구실 아래 자연스럽게 공식·비공식 활동을 중단하게 됐지요.
그러기를 올해로 만 5년이 되는데, 지난해 연말 대통령 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으로 신원조회를 해도 되겠냐는 연락이 왔습니다. 번쩍 뇌신경이 곤두섰습니다. 5년간 방콕하고 지낸 사람에게 조경분야를 넘어 ‘나라에 대한 봉사를 해보라’는 말은 제겐 현역 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떻게든 한 번 움직여보라는 말이지? 그것도 나라를 위해? 그래, 한 번 해보자! 지금껏 고통을 ‘나라 봉사’의 정신력으로 상쇄시켜보자”. 그렇게 해서 올 3월 27일부터 국가건축위원회를 통해 5년 만에 공식적인 외부활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 이후 최근까지 도시건축관련 국가정책 개발, 관련 회의, 각종 외부행사, 정책 개발과 관련해 국토부와 서울시 등과의 협력체계(MOU) 구축 등 다양한 업무에서 공식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국건위, 국토교통부, 서울시 등 3개 기관의 MOU협약식에 조세환 분과위원장이 인사하고 있다.
국건위, 국토교통부, 서울시 등 3개 기관의 MOU 협약 후 기념촬영(왼쪽에서 3번째가 조세환 분과위원장. 이어서 원희룡 장관, 권영걸 위원장, 오세훈 서울시장이 보인다. 오른쪽에서 첫번째가 조경진 교수)
대구시 동성로 캠퍼스 타운 조성 협약식 및 심포지엄 행사에서 축사 모습
특히 지난 10월 31일에 ‘대한민국 건축문화대상’의 시상자로 참석하셨습니다. ‘한국건축문화대상’은 어떤 행사인가요?
저는 국건위에서 국토환경디자인분과 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이번에 시상식에 참석하게 된 것은 국건위 권영걸 위원장을 대신해서 ‘대통령 소속 국건위 위원장상’을 시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한국건축문화대상’은 국토교통부 주최, (사)대한건축협회 주관으로 치러지는 행사인데, 건축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시상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분야에 비유한다면 ‘대한민국 조경대상’에 해당된다고 할까요. 하지만 좀 특이한 점이 있었습니다.
우선, ㈜서울경제신문이 행사 지원을 하는 등 언론이 지원한다는 것이지요. 또 다른 측면은 건축 ‘문화’를 진흥하기 위한다는 맥락입니다. 즉, 건축문화를 증진하기 위해 중앙정부와 관련 업계, 언론이 참여해 만들어 가는 시상 행사라는 점입니다.
조경분야도 문화로 일간 언론과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시상 분야도 더 다양화되고 있더군요. ‘건축물’, ‘건축문화진흥’, ‘학생설계공모전’ 등 3개 분야가 있는데, 건축물과 학생설계공모전을 제외하고 건축문화진흥에 대한 부문은 우리 조경분야에서는 없는 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건축문화진흥 부문은 다시 ‘건축활동’, ‘미디어’, ‘출판’, ‘학생공모’ 등 4개 부문으로 시상하는데, 건축물뿐만 아니라 주변부까지 상당히 스펙트럼을 넓혀 시상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특이했습니다. 문화로 관점을 바꾸니 시상의 권위나 대상의 스펙트럼이 달라졌다고나 할까요.
한국건축문화대상 시상 후 기념 사진_앞 줄 왼쪽부터 석영훈 (사)대한건축사협회 회장, 조세환 국건위 국토환경디자인분과 위원장, 김오진 국토교통부 차관, 손동영 ㈜서울경제신문 대표이사/사장
또한 건축물에서도 ‘공공부문’, ‘민간부문’, ‘주택부문’ 등 보다 다면화하고 있는데, 조경분야도 이러한 점은 참고해야 할 사항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특히, ㈜서울경제신문과 같은 대중 매체인 일간 언론이 건축을 지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습니다.
관련해 이번 행사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조선일보와 같은 주류 일간 언론에서 ‘미래건축문화대상’을 시상하고 있다는 점 등은 대단히 눈여겨 볼만한 대목입니다. 모두 문화로서의 건축의 역량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역시, 문화의 힘은 대단한 것입니다.
‘문화’와 관련해 교수님께서 2010년 한국조경학회장 시절에 ‘대한민국 조경문화제’를 주창하고 시상하셨습니다.
사실 당시 제가 ‘대한민국 조경문화제’를 주창한 것은 바로 건축계의 ‘한국건축문화대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지요. ’건축을 문화로 바라본다‘는 것은 제게 눈이 번뜩 뜨이는 주제였습니다. 조경을 문화로 바라보지 못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침 당시 전 회장단(제18대 김학범 회장)에서 물려받은 ’대한민국 조경주간‘이란 행사가 있었습니다. 일주일을 아예 조경행사 기간으로 잡은 훌륭한 기획이었습니다.
‘조경분야를 문화로 확장해서 키워 가고, 앞에서 내려오는 행사를 계승해서 더 발전시켜 나가자’는 비전을 가지고 ‘대한민국 조경문화제’를 주창하게 됐습니다. 마침 당시 청와대 이동우 정책기획비서관과 연락이 닿을 수 있어 이 행사의 취지를 설명하고 대통령상 등 관련 정부 기관의 협조를 요청했었고요.
대통령 비서관의 반응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대한민국 조경문화제’, 제목이 좋잖아요! 단순히 조경이 아니라 조경문화제라니 더 있어 보이잖아요. 덕분에 수월하게 행안부의 협조를 얻어 대통령상과 함께 행안부, 국토부, 환경부 등 중앙부처 장관상을 시상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 조경문화제’는 ‘조경의 날’, ‘조경대상, ’환경조경대전‘, ’국제 학술심포지엄‘, ’조경인 골프대회‘, ’조경인 등반대회‘ 등 각 단체별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진행했었습니다. 조경분야의 단결을 통해 내부 결속력을 다지고, 대정부 및 시민에게 조경분야를 알리고 세를 결집해서 홍보하고자 하는 매머드급 행사였습니다.
조경분야도 앞선 좋은 문화, 계승하고 전승해 가는 지혜 갖췄으면...
행사가 끝나고 이동우 비서관이 “조경분야 행사가 이 정도일 줄 몰랐다. 진작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즉, 비서관급이 나와서 대통령상을 시상하는 정도가 아니라 더 높은 급의 인사가 시상하러 나올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대한민국 조경문화제’를 한다는 것은 문화라는 이름 아래 대외적으로 조경분야 마케팅을 하고, 조경분야를 융합시켜 협력하고 단결해서 조경분야 발전의 기제로 삼는 것입니다. 근데, 문화적 진화는 어느 날 갑자기 툭 튀어나와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과거 훌륭한 문화가 있다면 그것의 장점을 계승하고 확장시키고, 단점을 보완해서 시간을 두고 꾸준히 집적하고, 전승해 발전시켜 나감으로써 성공적 문화 진화를 이뤄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종국엔 문명으로 결실을 맺고요. 조경분야에서 그런 행사가 계승되지 않고 단절됐다는 것이 참 아쉽게 느껴집니다.
창조란 무(無)의 상태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전부터 있어 온 좋은 점을 더 혁신하고 나쁜 점을 개선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거든요. 그렇다면 혁신은 앞선 그 무엇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계승과 함께 혁신은 앞에서 해 오던 것을 동시대에 더 잘 적응하고 작동시켜나가기 위한 하나의 전략 이상 다름 아닙니다. 혁신은 계속되어야 하고요, 그러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체되거나 퇴보하기 마련 아니겠어요?
조경가로서 건축분야인 한국건축문화대상 행사에 참여해 시상한 소감은?
오래전, 제가 건축분야와 조우해 충돌을 일으킨 사건이 한 번 있었습니다. 그 사건을 생각하면서 사실 만감이 교차했다고 할까요. 2008년 건축분야에서 ‘건축기본법’을 제정할 시기였습니다. 5월의 어느 날 마지막 단계인 공청회 자리에서 제가 조경가로 참가해 한 바탕 대소란을 일으킨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강당에서 열린 ‘건축기본법 제정 공청회’ 자리로 기억됩니다. 그때 특히 저의 강한 흥미를 끈 것은 당시 건축기본법(안) 안에는 ‘공간환경’과 ‘공공공간’이 건축분야의 새로운 영역으로 정의되어 있었습니다.
문제는 공간환경이 건축물의 외부환경을 다루는 조경분야와 겹치는 부분이었다는 것입니다. 공간환경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 건축기본법 안에 포함시킴으로써 발생한 일이었지요.
국가건축위원회 위원장 상 시상(왼쪽에서 두 번째가 조세환 국토환경디자인분과 위원장)
건축, 도시 등 공간환경을 다루는 분야와 교류해야
사실 공간환경은 공공공간과 함께 조경가들에겐 매우 익숙한 전문 영역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건축분야에서 그렇게 처음으로 용어를 만들고 새롭게 내용을 정의하려 하니 발표가 쉽지 않음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한 분야의 전문 영역 문제로서 그냥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그 당시 (사)한국조경학회 수석부회장이었기에 단체를 리드하는 한 사람으로서 규범적으로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발표와 토론이 끝난 뒤 플로어로 마이크가 넘어왔을 때 제가 첫 번째로 발언권을 얻어 일갈했었습니다. “발표자께서는 혹시 사이먼즈가 저술한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라는 책을 읽어 보셨습니까? 지금 교수님께서 발표한 내용은 조경분야의 교과서격 서적인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에 있는 내용을 그렇게 힘들게 발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조경분야의 영역을 건축분야로 가지고 가려 갑니까?”
그렇게 제가 큰소리로 항의함과 거의 동시에 토론회 좌장이 급히 의사봉을 치며 “이만 공청회를 마치겠습니다” 하고 폐회를 선언했었습니다. 완전 공청회 마지막 끝맺음 자리에서 한 번의 소동을 일으킨 것이지요.
이 한 바탕의 소동은 그 이후 제가 (사)한국조경학회 수석부회장, 학회장 등을 하는 동안 건축분야 전문가들과 본격적인 교류를 하게 된 직접적 계기가 됐습니다. 그렇게 큰 소리로 항의를 하자, 폐회 선언 후 관계자께서 급히 제가 있는 곳으로 뛰어 올라와 공청회 관련자들이 점심식사를 하는데 초대를 하더군요.
공청회에 혼란을 준 사람이 주최측 자리에 가서 함께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하지만 워낙 강하게 잡아끄니, 솔직히 힘에 딸려 그 자리에 가게 됐습니다. 그 자리에 가니 김진애 씨를 비롯한 건축계의 지도자들이 다 모여 있더군요.
물론 저를 김진애 씨와 함께 제일 중심석에 자리를 마련해 주더군요. 건축계 주요 인사들과 인사도 나누고, ‘auri를 만들 때 조경전문가들을 많이 채용하겠다’, ‘auri 만드는 데 조경분야관련 자문을 구하겠다’ 등의 제의를 하더군요.
그 이후 실제로 그렇게 실행하던가요?
네. 약속을 지키더군요. auri를 처음 만들면서 중요 사항을 의결할 때면 저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해서 의견을 구했고, 조경전문가 채용도 했습니다. 또 국가한옥센터 설립 등 중요한 행사가 있으면 저를 개막식에 내빈으로 초대하고, 테이프 커팅식에도 VIP석에 서도록 하는 등 격식을 갖춰 주었습니다.(사진 6 참조)
그 이후 건축가들이 주축이 되는 (사)한국도시설계학회 총회에도 저를 (사)한국조경학회장 자격으로 초청하고, 축사도 요청하는 등 건축·도시설계분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됐습니다. 그때 제해성 제3기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 손세관 auri 제2대 소장 등 건축계의 쟁쟁한 인사들과 교우를 맺게 됐습니다. 마침 저와 모두 동년배이기도 했습니다.
중앙에서 우측 두 번째(조세환 당시 (사)한국조경학회 회장). 손세관 auri 소장, 강병근 국토부 도시정책국장, 제해성 교수, 박영효 국토연구원장, 김기호 교수 등 건축계 인사들이 보인다)
그렇다면 동시대에도 또 한 번 그런 소동을 일으킬 필요가 있는 것 아닌지요?
또 한 번 소동을 일으키라고요? 전 기자님이 이제야 건축분야를 대신해서 제가 그때 들어야 할 꾸중을 제대로 한 번 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실 타 분야에 가서 그런 난폭한 언행을 보이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죠.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 건축계 인사들이 참 좋은 분들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항의나 싸움이 아니라 제게 통 크게 타협하는 자세를 보여주었거든요.
지나고 보니 한편으로는 제가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점잖은 대학교수가 남의 분야 행사에 가서 그렇게 난리 아닌 난리를 쳤다는 게요. 사실 제가 정의감은 좀 강하지만 개인적 성품은 그렇게 못하는 스타일이거든요. 다만, (사)한국조경학회 수석부회장으로서 조경계를 대표한다는 생각에서만 가능했겠지요. 책임감으로 말입니다.
만약 제 개인의 이해가 걸려 있었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 공개된 자리에서 그렇게 하진 못했을 것입니다. 사실 그때 공청회 자리에서도 당당하게 “(사)한국조경학회 수석부회장, 한양대 조세환 교수입니다”를 분명히 먼저 선창하고 그렇게 세게 항의를 했으니까요.
(다음편 계속)
- 글 _ 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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