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산업이 상생하는 정원도시 전주로”

[인터뷰] 최신현 전주시 총괄조경·건축가
라펜트l전지은 기자l기사입력2021-06-06
전주시에서 첫 정원박람회인 ‘2021 꽃심, 전주정원문화박람회’가 개최됐다. ‘정원, 문화와 경제의 상생’이라는 주제로 전주종합경기장과 노송동 일원, 전주시 양묘장, 팔복예술공장 등에서 열리는 이번 박람회는 다양한 정원소재를 통해 서로 연대하고 치유하는 박람회이자 산업으로의 성장을 목표로 하는 ‘정원산업’ 기반 박람회로 마련됐다.

‘천만그루 정원도시’를 표방하고 있는 전주시의 정원문화와 정원산업, 그 중심에는 최신현 총괄조경가가 있다. 이번 박람회 또한 전주정원문화박람회 조직위원장으로서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그의 손길이 미쳤다. 박람회의 정원의 ‘문화’와 ‘산업’을 모두 아우르는 주제 역시 범상치 않다.

최신현 총괄조경가는 “‘정원도시’라는 것은 정원 몇 개 만들어놓고 정원도시라 명명하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시민이 ‘공감’하고 정원이 그들의 삶이 돼야 그때야 비로소 ‘정원도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정원도시란 무엇일까?

최신현 전주시 총괄조경·건축가, 전주정원문화박람회 조직위원장


정원, 문화와 경제의 상생

3년의 총괄조경가 임기, 그 시작점에서 최신현 총괄조경가는 김승수 전주시장에게 “공공에서 정원을 몇 개 만들었어도 시민들 자체가 삶이 힘들어 꽃을 봐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그것은 정원도시가 아니라 생각한다. 시민이 스스로 꽃을 사고 싶고 내 집 앞에 심고 싶은 ‘마음’이 기반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김 시장은 이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급할 것 없이 서서히 시민들에게 정원문화를 확산하고 ‘공감’하게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임기 첫해는 전주시민들이 얼마나 정원에 애착이 있는가를 들여다보고, 발굴하며, 시민부터 행정의 모든 분들까지 가릴 것 없이 정원문화에 대해 교육하는 시간이었다.

직접 자신의 집에 자기가 좋아하는 식물로 정원을 만드는 것이 하나의 정원문화이다. 전주에는 집집마다 작은 공간에 식물을 심는 분들이 많았다. ‘초록정원사’라는 이름의 시민정원사 양성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정원문화가 바탕이 돼 있는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발굴해 조금만 지원한다면 정원문화가 일어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들에게 식물을 공급하면 동네 마당과 빈터가 정원이 됐고, 이를 토대로 사람들이 소통하며 공동체가 형성이 되고 동네 자체가 달라지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고, 여러 동네 공동체들이 생겨났다.

동시에 공공에서는 공공기관의 조경녹지를 작은 곳부터 정원화 하기 시작했다. 수목을 1열식재한 띠녹지를 걷어내고 토양을 치환하고, 빗물이 들어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든 뒤 계절을 느낄 수 있는 식물들을 식재했다. 교통섬도 꽃 피고 열매 맺는 나무를 식재하고 정원화한 뒤 벤치를 두어 그늘 밑에서 쉬다 갈 수 있게끔 했다. 정원도시에 대한 공감대가 이미 형성이 돼 있었기에 호평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전주시에 정원문화가 싹트고 자리를 잡았다.

여기에 정원산업을 위한 준비도 더해졌다.

정원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식물소재이지만 좋은 식물을 찾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고, 중간도매상을 통해서 살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가격도 올라가 있어 모든 것을 소비자가 감당해야 하는 구조이기도 하다.
전주는 대한민국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북은 관목생산량이 높다. 아울러 정원문화가 자리 잡았으니 문화가 산업으로 이어져 실질적으로 정원도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생산자와 소비자가 한데 모이는 정원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그 시작이 이번 ‘2021 꽃심, 정원문화박람회’이다.

식물소재 중심의 박람회를 준비하기 위해 박람회 조직위가 꾸려졌다. 조직위는 전국의 식물생산업체의 현황을 파악하고, 직접 찾아가기도 하면서 좋은 소재가 있는 업체들에게 무료로 전시판매할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했다. 그렇게 모인 것이 박람회의 ‘산업전’이 됐다. 이들이 전주에서 지속적으로 판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클러스터에 입점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이에 더해 전주가 가지고 있는 품격있는 예술적 가치를 정원에 녹이고자 지역 예술가들과 함께 가든퍼니처나 오브제들을 제작해 전시, 판매하도록 했다. 기성품과 달리 단 하나밖에 없는 소품이다. 역시 산업전에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으며, 예술가들이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정원산업 클러스터와 연결할 계획이다.


작가들의 정원

정원문화박람회에서는 전문작가와 시민, 마을공동체의 도시공공정원을 만나볼 수 있다. 노송동 일원에는 3개의 전문작가정원, 4개의 시민작가정원이 조성됐다. 노송동 내 시유지를 전부 찾아내고 그중 정원을 만들기 좋은 땅을 골라 그곳에 정원을 만들도록 했다.

내년에 다른 동네에서 박람회가 열린다면 또 시유지를 찾아 정원을 조성하고, 그렇게 10년이 지나면 100개의 정원이 있는 도시가 될 것이고, 정원투어도 이루어질 것이다.
초청작가정원도 4개소 조성됐다. 초청작가는 구조물이나 시설물이 아닌 식물을 중심으로 정원을 조성할 수 있는 분들로 구성했다.

권춘희 작가는 정원이 조성된 팔복예술공장은 산단내 공장을 문화예술공간으로 바꾼 성공사례로 꼽히는 곳이다. 그러나 건축가 중심으로 재생된 곳이기에 그 자체로는 아름답지만 어린이 예술놀이터로서 기능하기에는 차가운 측면이 있어, 정원을 추가 조성함으로써 따뜻한 놀이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곳을 대상지로 삼았다.

‘3인 무색정원’이라는 주제로 조성되는 전주시 호동골 양묘장에는 안계동 작가(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 정주현 작가(경관제작소 외연), 최원만 작가(신화컨설팅)가 꽃심의 정신 ‘풍류, 올곧음, 대동’을 정원으로 표현했다. 특히 이곳은 ‘꽃심정원’이라는 이름의 지방정원을 조성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설계안에는 돌담으로 둘러싼 여러 개의 빈 땅을 두었는데, 정원박람회가 열릴 때마다 빈 공간에 초청작가들의 정원을 조성할 수 있도록 둔 것이다. 정원이 조성되기 전까지는 꽃으로 식재를 해두었다가 박람회가 열리면 매년 서너개의 정원들이 조성되어 국내외의 세계적인 작가들의 정원을 볼 수 있는 지방정원으로 계획했다.

‘꽃심정원’ 스케치 / 최신현 제공

전주시민들은 대동·풍류·올곧음·창신의 특질이 있으며, 이 네 가지를 아우르는 ‘꽃심’은 전주의 얼이며 정신이다. ‘대동’은 타인을 배려하고 포용하며 함께하는 정신, ‘풍류’는 문화예술을 애호하며 품격을 추구하는 정신, ‘올곧음’은 의로움과 바름을 지키고 숭상하는 선비정신, ‘창신’은 전통을 토대로 새로운 사회와 문화를 창출해가는 정신이다. 총괄조경가로서 3년째 전주를 경험하고 있는 그는 전주시민들의 꽃심의 정신을 피부로 느꼈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에게 전주를 소개할 때 ‘품격있는 도시’라 소개하기도 한다.

전주의 정신인 ‘꽃심’은 꽃을 피워내는 힘, 새로운 문화와 세상을 열어가는 강인한 힘이다. 이것을 정원에 담았으니 ‘꽃심정원’이 앞으로 전주의 중심에서 정신적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란다.

시민들의 정원

박람회의 일환으로 조성된 다양한 정원들도 있지만 전주시 안에는 정원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조성한 정원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그중 하나가 한 요리학원 원장님의 정원이다. 도심에서 꽤 규모가 있는 학원을 운영하다 정원이 있는 집으로 자리를 옮긴 후, 정원에 있는 재료로 요리를 만드는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시민이다. 정원을 갖게 되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니 그것을 나누기 위해 자신의 집 골목에 먹을 수 있는 작물들을 정성스럽게 가꾸어놓고 지역주민들에게 마음껏 가져갈 수 있도록 정원을 꾸렸다. 처음에는 지역주민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그 마음을 알고 난 뒤에는 서로 소통하면서 공동체가 살아났다고. 또한 그 동네 독거노인분들의 집 앞에 손편지와 함께 화분을 가져다 두면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동네를 걷다가 화분에 며칠 동안 물을 준 흔적이 없으면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들여다보기도 한다고 한다.

이외에도 아파트 조경을 아름답게 가꾸고자 하는 관리사무소장, 작은 땅에 정원을 만들어두고 누군가 올 때마다 차 한 잔을 나누는 사람 등 시민들의 정원이 숨어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꽃 하나를 심고 사랑으로 키워가는 정원이 가장 가치 있는 정원 아닌가. 이런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그거야 말로 정원도시일 것이다. 시가 예산을 들여 일순간에 만드는 정원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

조경가가 바라보는 도시

최신현 총괄조경가는 전주에 연고가 전혀 없었다. 순전히 정원도시를 만들고자 한 김승수 시장의 요청이 있었고, 정원도시의 방향성에 대해 공유하면서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이 자연친화적이고 생태기반인 점에서 의견이 일치해 시작됐다.

‘건축정책기본법’에 의해 총괄건축가는 지자체별로 둘 수 있지만 총괄조경가는 법적 근거가 없어 시는 조례를 개정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총괄건축가가 있음에도 왜 총괄조경가를 두어야 하느냐는 시의회의 반대도 있었으나 김 시장은 “정원도시를 표방하는 전주로서는 건축가보다 조경가가 더 필요하다”고 의견을 강력히 피력했으며, 최신현 대표의 특강자리를 마련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설득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했다.

조경가는 공원녹지부터 오픈스페이스, 경관 등 모든 것들을 다룰 수 있다. 보다 광의의 범위에서 도시의 매트릭스를 제대로 바라보고 방향성과 구조를 잡아나가는 과정은 조경가에게 적합하기도 하다. 도시는 건축뿐만 아니라 조경, 도시 등 다양한 분야가 만나 형성되며, 그 도시의 특성에 맞게 총괄책임자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이 맡을 수 있다. 현재는 총괄건축가만이 법적 근거를 가지고 있지만 분명 도시를 보는 관점과 스케일의 차이가 분명히 있고, 다룰 수 있는 영역도 다르다. 그렇기에 ‘함께 해나가야 한다’고 최신현 총괄조경가는 말한다. 그는 총괄조경가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총괄건축가도 겸직하고 있어 도시의 모든 것에 대해 자문하고 있다.

전주시의 사례가 총괄조경가를 둠으로써 도시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목도할 수 있는 사례가 되길 바란다. 그렇게 되면 총괄조경가의 자질을 알아보는 지자체들이 많아지고, 총괄건축가처럼 총괄조경가도 법에 편입돼 자질을 갖춘 조경가분들이 각 도시에서 활약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

‘정원도시’도, ‘생태 슬로시티’도 결국은 ‘사람’이 중심

콘크리트만 보던 사람이 정원을 보기 시작하면 마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잘 알고 있다. 마음이 달라지면 관계가 달라지고, 보는 관점이 달라지면 그때부터는 이전과는 엄청나게 다른 도시가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전주의 매력이다.
최신현 총괄조경가의 3년의 임기 중 3년차인 지금에 이르기까지는 김승수 시장의 역할이 컸다고 말한다. 김 시장은 총괄조경·건축가를 그저 자문받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닌 해당 영역에 대해서 주도적으로 할 수 있도록 모든 권한을 부여했다. 또한 함께 하는 모든 이들이 총괄조경가의 의견에 지지할 수 있도록 전주의 지식인, 시민, 공무원, 구청장 등을 대상으로 강의를 통해 어떤 마인드로 어떤 도시를 구상하고 있는지에 대해 공유하는 일들을 선행했다. 그렇기에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도시를 바라보며 열정적으로 임한다고 한다.

‘슬로시티’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 최초 도심형 국제슬로시티 인증을 받은 전주시는 지난 5월 생태와 자연, 사람 중심의 지속가능한 슬로시티 전주 위상을 확고히 하기 위해 ‘친자연 슬로시티 전주’를 비전으로 ‘제3기 국제슬로시티 종합계획’을 수립했다고 밝혔다.

최신현 총괄조경가는 “슬로시티라는 것 자체가 생태를 기반으로 해야 가능하다. 생태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더 좋아진다는 것이며 이것이 슬로시티의 기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전주의 우수한 생태성은 김승수 시장 임기 시작부터 생태를 기반으로 한 도시를 계획했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두 번의 시장을 역임하고 올해로 임기 7년차인 김승수 시장은 도시의 역사성과 맥락, 경관에 대한 가치를 관리해 한옥마을 주변의 역사적 경관을 지켰고, 구도심은 최대한 전주의 본모습을 살려가면서 바뀌어 가도록 하고 있다.

대부분 슬로시티는 뭔가 제어하거나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마음과 정신을 봐야 한다. 들여다보면 전부 ‘사람’이 중심이다. 그렇다면 미래지향적이고 친환경적인 슬로시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일례로 김승수 시장의 시청 바로 앞 선미촌(성매매집결지)를 재생하는 방식을 꼽았다. 재건축으로 완전히 바꿔버릴 수 있지만 그렇다면 그 안에 일하던 여성들은 하루아침에 갈 곳이 없어진다. ‘사람에 대한 재생’ 없이 도시만 재생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 김 시장의 생각이었다고. 그래서 고안한 방법이 선미촌의 집 중 매매가 나오면 시에서 사서 공무원이 근무를 하도록 했다. 공무원은 다니면서 불법이라는 것을 계도하는 일을 했다. 또 매매가 나오면 시가 사서 지역의 예술가가 그곳에서 활동하도록 했다. 그렇게 7년이 지나니 소수만 남아있고 나머지 공간은 문화예술공간으로 변모했다. 일하던 여성직원들에 대해서는 시에서 매달 일정 금액을 지급하며 정착을 돕고 있다. 결국은 ‘성과’가 아닌 ‘사람’을 중심에 두고 있는 것이다.

시청앞 잔디광장은 어린이들의 놀이터다. 죽은 통나무를 갖다두면 아이들이 뛰어논다. 도서관도 도서관이자 놀이터가 된다. SRT도 전주를 통과하지 않고 익산으로 우회하도록 했다. 불편함이 있지만 많은 유동인구들이 다니며 복잡한 것보다 살기 좋은 것이 우선이다. 최신현 총괄조경가는 전주는 그런 곳이라고 말한다.

정원에 식물을 심을 때, 내가 원하는 식물이 아닌 환경에 적합한 식물을 찾아내고, 어떻게 배치해 계절마다 살아있음을 보게 할 것인가, 5년, 10년 뒤에 이 식물이 어떤 폭으로 자랄 것인가를 생각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식물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그들이 마음껏 뿌리내리고 살 수 있도록 조성한다면 정원은 더이상 관리의 대상이 아니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무엇인가를 디자인해서 잘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을 중심에 두고 원래 도시가 갖고 있는 모습을 최대한 지켜가면서 만들어가는 도시. 이것이 도시를 디자인하는 총괄조경·건축가로서 첫 번째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다.

 

글·사진 _ 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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