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연길에 한국인이 조성하는 ‘자연주의’ 리조트 들어선다
[인터뷰] 정정수, 강철희, 박세영, 나금자라펜트l전지은 기자l기사입력2017-08-10
리조트 계획안 ⓒ박세영 연변대 교수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延边朝鲜族自治州)의 주도(州都)인 연길은 주민의 40% 이상이 조선족이며 문화 중심지이다. 이곳에 한국조경가들이 시공․설계하는 리조트가 들어설 계획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최대한 자연을 보존하면서 작업을 진행한다는 점이며, 따라서 조경이 선행공종으로 시행된다.
연길시 평봉산 부근 약 100만평 부지에 들어설 ‘연길시 평봉리조트’는 정정수 前전주기전대학 예술조경 교수가 조경을, 강철희 홍익대학교 건축설계 교수와 박세영 연변대학교 도시건축 교수가 건축을 맡았으며 나금자(Luo jin zi) 루오징산업그룹 회장이 투자한다.
리조트에는 호텔 및 콘도를 비롯해 온천, 폭포, 호수, 잔디밭, 주말농장, 주말자연체험학교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현재는 땅을 결정하고 농지를 건축할 수 있는 부지로 바꾸는 사업승인 허가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6월 대상지 답사, 7월 한국에서 정정수 교수와 강철희 교수가 작업한 현장들을 답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들을 정정수 교수의 손을 거친 벽초지 수목원에서 만나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강철희 홍익대 교수, 정정수 前전주기전대 교수, 나금자 루오징산업그룹 회장, 박세영 연변대 교수
네 분이 만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나금자 회장(이하 나) : 연변은 관광도시이나 관광에 좋은 환경이 제공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연변에서 부동산업을 하고 있는데, 우리 민족에게도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자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했으며, 연변대학의 박세영 교수님께 의뢰를 하게 된 것입니다.
박세영 교수(이하 박) : 나금자 회장님이 먼저 저에게 의뢰를 해주셨고, 제가 강철희 교수님께 같이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강철희 교수님께서 리조트는 특히 조경이 중요하니 정정수 교수님과 함께 하자고 추천해주셨고요.
지난 6월 연길 답사를 다녀오셨는데, 대상지는 어떤 곳인가요?
박 : 대상지는 새로 세워지는 연길 국제공항과는 5㎞ 이내, 고속철도와는 15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중국 장춘시, 북곁, 한국 등에서 비행기 혹은 고속철도로 접근하기에 가깝고 편리한 곳입니다. 연길 시내와도 15분 거리입니다.
주변에는 고구려 때로 추정되는 고대 산성이 있고, 윤동주 시인의 생가가 있는 룡정시와도 연결이 됩니다. 또한 눈물 젖은 두만강 노래가 만든 도문시 두만강과 고속철도로 15분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강철희 교수(이하 강) : 발해의 추억이 담겨있는 곳이고, 굉장히 푸르고 여유가 있는 땅이었습니다. 광활한 구릉에 마소가 달리고 있는 광경이었습니다. 최대한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방법으로 시행하고자 합니다.
정정수 교수(이하 정) : 우리나라는 산이 많은데 그곳은 낮은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너무 아름다운 곳이기에 땅을 직각으로 파서 건물을 짓는 등 자연을 훼손하면서 리조트를 조성하는 것은 지양하고 싶습니다.
거제도, 통영, 홍성, 벽초지까지 정정수 교수님과 강철희 교수님의 작품들을 보셨는데, 어떠셨는지?
나 : 너무 좋았습니다. 한국에서 직접 눈으로 보니 성공률이 200% 이상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사람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조경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연변은 자연이 수려하기 때문에 자연보호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인위적이지 않은 경관조성이 조선족의 품격에 맞는 조경이라는 생각입니다. 특히 리조트 공간은 조경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에 홍성 천수마을이나 벽초지 수목원 같은 방식으로 조경을 하게 된다면 지역민들에게 환영을 받을 것 같습니다.
통상적으로 건축의 후속공정으로 조경이 진행되는데, 이번 사업은 작업방식이 독특하다고 들었습니다.
박 : 계획 초기단계부터 조경가와 건축가가 함께 작업하는 방식입니다. 건축부터 하게 된다면 땅을 파면서 수려한 자연환경을 파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통상 자연적으로 건물을 짓는다고 해놓고 자연을 다 파괴한 뒤 다시 억지로 자연을 집어넣는 방식으로 진행이 됐죠. 그러나 정정수 교수님께서 우선 조경작업을 통해 자연의 상태를 잘 만들어놓고 그에 맞는 건물을 짓도록 하자 제안하셨습니다. 훨씬 자연적인 방법이며, 억지로 넣은 듯한 조경이 아닌 저희가 원하는 조경을 얻을 수 있습니다. 비용도 절약되고, 일을 두 번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지요. 훨씬 더 자연과 어울리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대상지는 마치 옛 역사 속으로 들어가 그때의 소리가 들릴 것 같은 그때의 상태를 잘 보존하고 있는 자연 상태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연상태를 인위적으로 다듬지 않고 자연 속에 들어가는 자연과 더불어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은 앞으로 개발을 하려는 이 지역에 좋은 가이드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정 : 건축을 하는 과정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조경을 먼저 작업하는 방식, 홍성의 천수마을과 같이 진행하는 것을 주장했습니다. 조경을 먼저 한다면 전체적인 공간의 디자인을 격상할 수 있습니다.
저는 리조트를 찾는 사람들에게 ‘전원’을 느낄 수 있는 장소가 되도록 조성하고 싶습니다. 숲도 있고, 농사짓는 공간도 있는 것이 전원인데, 전원을 다 없애버린 후 택지만 만들어놓고 ‘전원주택단지’라고 이름만 붙이는 식의 나쁜 방법으로 진행하고 싶지 않습니다.
강 : 조경과 건축이 함께 작업하며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려놓고 작업하는 방식은 건축과 조경이 조화롭습니다. 보통은 건축이 먼저 마스터플랜을 하고 조경을 나중에 보완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데, 이런 방식으로 작업을 하면 조경은 그저 건축물의 첨가물에 불과하게 됩니다. 물론 건물이 위주가 되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 건축물이 위주가 된다면 결국 외로운 건축물이 되어버립니다. 건축물은 자연 속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아파트는 태생 자체가 삭막한 것입니다. 잘 디자인하고 입면을 고친다고 하더라도 반복되어야 하기 때문에 기하학적인 선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해외의 많은 건축가들은 이것에서 벗어나려고 나름대로 설계를 하고 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태생 자체가 공학적인 Mass construction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아름답고 자연적인 아파트 조경을 통해 이를 상쇄하려고 하죠.
저희는 대지를 평평하게 만든 다음 건물을 만든다는 생각은 지양하고, 자연에 건물을 짓는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주의에 입각한 건물 디자인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나 : 이러한 방식은 연길지역의 좋은 자연환경을 해치지 않고 사업을 추진할 수 있기에 마음에 듭니다. 본래 조선족의 자연을 훼손하는 방식은 원하지 않습니다. 새롭게 조성되는 조경 또한 꽃이나 나무를 강아지 털처럼 잘라놓는 것이 아닌 최대한 자연스럽게, 원래 있었던 것처럼 조성되는 것. 그것이 조선족의 품격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정 : 연변에는 학교에 조경과가 없고 조경에 대한 개념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진짜 전원주택의 모습을 작업과정에서 보여주고 싶습니다. 아울러 남북한을 통틀어 조선족의 조경을 표현하고자 합니다. 중국이나 일본과도 다르고, 남북과도 다른,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있는 것을 그대로 살리는 조선의 자연주의적인 사고에 의해 만들어지는 조경을 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조경을 통해 지역민들에게 조선조경이라는 것에 대해 공감할 수 있도록 이야기해주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예스터데이 같은 오래전 팝송이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옛것이 좋아서가 아닌, 지금까지 살아남은 곡이기 때문입니다. 건축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장에서 나온 것같이 않고 사람 손으로 만든 듯한 느낌으로 현재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서부의 건축양식처럼 리조트를 건축하자는 이야기도 오가고 있습니다.
강 : 제가 하는 건축은 많은 경우 자연물, 특히 꽃을 모티브로 그들의 형태를 형상화하는 작업들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에티오피아 스타디움이나 중국 곤명 국제 컨벤션센터 등이 있습니다. 이번 리조트의 건축물도 자연물을 닮은 형태를 많이 적용하려고 합니다. 이번 프로젝트가 기능만 있고 망가지는 것이 아닌 자연주의를 회복하는 리조트 사례의 효시가 되길 바랍니다.
박 : 일반적인 개발은 건축물을 짓고, 눈에 보이는 공간에 조경을 하는, 경제적 이익을 위한 방식으로 진행해왔다면, 이번에는 자연 속에서 걷고, 느끼고, 배울 수 있도록 건축을 자연처럼 세우려고 합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모든 전문가들이 더 깊은 자연 속으로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새와 나무, 그리고 물고기가 있는 개울. 사람 또한 그 속에 함께 어울리는 개발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나 : 연변에서도 최근 좋은 환경을 누리고자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환경입니다. 중국에서도 자연을 파괴하는 사례가 많은데, 이번 리조트는 자연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선진조경의 기술과 경험이 적용되길 바랍니다. 세분께서 하시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연변에서도 환영받을 것 같습니다. 리조트가 지역민들에게 자연스럽고 좋은 환경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강철희 교수, 정정수 교수, 박세영 교수
- 글·사진 _ 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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