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세종수목원은 ‘정원, 한국을 담다’를 주제로 ‘한국의 정서와 개성을 담은 K-Garden’ 워크숍을 개최했다.

K-Garden이란 무엇일까? 이를 정립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됐다.

국립세종수목원은 ‘정원, 한국을 담다’를 주제로 ‘한국의 정서와 개성을 담은 K-Garden’ 워크숍을 6일(화) 오후 2시부터 연구동 대강당에서 개최했다.

류광수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이사장은 개회사에서 “K-Garden은 전통한복이 아니라 개량한복이다. 이를 어떻게 실용화하고 현대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과정이다. 향후 형태, 소재, 기법, 범위, 등이 잘 정리될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날 워크숍에서는 6가지 주제의 발제와 토론으로 진행됐다.

국가별 대표정원 사례와 시사점

황주영 박사(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 객원연구원)는 “예술로서의 정원 가꾸기의 역사는 르네상스 시대부터이며, 이때 ‘국가성’이 정원의 평가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19세기, 20세기 유럽에서는 쪼개져 있던 민족, 나라들이 통합되는 과정을 겪었고, 이 과정에서 예술이 중요한 도구가 된 것이다. 19세기 후반 문화유산 개념이 등장하고, 20세기 후반에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한 국가를 대표하는 정원이 됐다”고 설명하며, 미학적 관점뿐만이 아닌 다양한 관점에서의 시각을 소개했다.

영국의 경우는 정원에 정치적 메시지를 씌워 당의 의견을 피력하는데 활용했다. 기하학식 정원에서 권위주의를 나타내는 보수당의 성격을, 자연풍경식 정원에서는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자유당의 성격을 담고 있다.

이탈리아는 파시즘 시대 무솔리니가 ‘이탈리아적인 것’을 강조하면서 정원이 재조명받았으며, 이탈리아적인 정원에 대한 논의가 촉발됐다. 크게 르네상스 시대의 정원문화와 20세기 초중반 정원에 쓰인 식물 소재로 구분된다.

프랑스의 경우는 18세기에 기념물 문화재에 대한 개념이 법에 등장하면서 유산 목록이 만들어지고, 20세기 후반에 정원에 대한 관심이 부각됐다. 프랑스의 문화부가 유산으로서의 정원과 현대의 정원까지 정원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관장하고 있고,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특히 1999년 태풍으로 정원이 망가지고 복원하는 과정에서 재창조의 개념이 등장했다.

황주영 박사는 “방지원소, 소나무, 정자 등 오브제 위주의 한국정원은 한계가 있다. 정원에 국가성을 어떻게 담느냐에 대한 논의가 돼야 하는데, 여기에 정치적인 것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문화적인 것들을 보다 더 포용해야 한다”고 전했다.

한국정원의 특성을 반영한 정원설계와 조성 사례

최재혁 Openness Studio 소장은 “한국정원을 조성할 때, 그 땅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땅의 가치가 어디서 오는가, 주변 환경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와 같은 물리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역사문화적인 맥락까지 고민한다”며, 소쇄원의 산세의 흐름에 순응하는 태도, 병산서원의 주변 환경과 정원의 관계, 만대루의 한국적인 건축양식 등에서 디자인을 차용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을 프로젝트 ‘산수마당’과 ‘청림월연’의 사례를 통해 설명했다.

2023 카타르 도하 국제원예농업박람회에 조성된 한국정원 ‘산수마당’(링크)은 켜켜이 쌓인 깊은 산맥이 특징인 한국의 경관과 자연과 융화되어 살아가고자 했던 별서정원의 특징을 현대적으로 모던하게 해석했으며, 진주 월아산 작가정원 ‘청림월연’은 전통정원의 공간구조와 스토리텔링 방식을 차용하되 공간의 구성요소를 짓는 방법은 현대적인 물성과 기술을 활용했다. 많은 요소를 담기보다 지형에 순응하는 터를 만들어 선비들이 그랬듯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정원의 핵심적 태도였다. 

최재혁 소장은 “한국정원에 대한 이용자들의 감상을 보다보면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어떠한 정서라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정원을 만드는 데는 편견 없이 접근하는 게 중요하다. 재해석에만 치우쳐도 안 되고, 너무 역사적인 요소를 그대로 만드는 일도 지양해야 한다”고 전했다.

아침고요수목원이 품은 한국의 정원

이병철 보성그룹 부사장은 전통 한국정원에 대해 “한국자연의 아름다움을 울타리 안으로 옮겨오는 것”이라 정의하며, 한국자연의 아름다움은 완만한 곡선, 비대칭의 균형, 사계절로 인한 다채로움을 꼽았다. 이어 이러한 한국자연의 미를 아침고요수목원에 적용한 사례들을 소개했다.

이병철 부사장은 “인간은 원래 자연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자연은 인간의 감정을 지배하게 됐고, 미의 개념 역시 자연의 체험으로부터 생겨나기 시작했기 때문에 인간이 인식하고 있는 미의 원형은 여전히 자연 가운데 존재하고 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자연 속에 존재하는 미의 요소들에 대한 예리한 관찰과 함께 아름다움을 방해하는 불필요한 요소들을 제거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황주영 박사(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 객원연구원), 최재혁 Openness Studio 소장, 이병철 보성그룹 부사장, 정미애 국립수목원 연구사, 김명회 산내식물원 대표, 박원순 국립세종수목원 실장 

K-가든 실증 기반 개념 정립과 적용연구

정미애 국립수목원 연구사는 ‘K-가든 실증 기반 개념 정립과 적용연구’에 대해 발제했다. 이번 연구는 한국정원을 고찰하고, K-Garden을 정립, 국내외로 대중화 및 세계화 전략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연구진은 조선 후기 민가정원의 공간구성, 식재수종, 변화과정, 문화재 지정 여부에 따른 차이를 분석하고 DB를 구축해 미지정 민가정원의 문화재 지정의 근거를 마련했다. 또한 근대정원을 발굴하고 기록해 한국정원의 다양성을 정립하고, 현대정원 219개소의 특징을 분석해 설계 경향을 파악했다. 현대정원은 ▲공공영역으로 확대되고 ▲도시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공공정원이며 ▲자연스러운 경관을 연출하는 것이 특징으로 나타났다.

이를 바탕으로 K-Garden을 ‘형태와 사상을 포함해 현대의 재료와 기술을 활용해 전통을 재해석한 한국의 정원’으로 정립하고, “역사와 전통을 재해석한 한국정원이자 국제적으로 한국의 대표하는 정원이다. 역사정원의 재현이 아닌 현대 도시사회의 동시대성을 반영하는 것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를 통해 ▲시대별 한국정원의 역사 고찰 및 기록물을 발간하고 ▲한국정원 대중화를 위한 실제 적용 가능한 K-Garden 디자인 가이드라인(요소) 개발, ▲시대 여건에 접합한 정원문화 콘텐츠을 제작할 방침이다. 

자생식물 중심의 K-Garden

김명회 산내식물원 대표는 자생식물 중심의 K-Garden을 한 꼭지로 짚으며 이를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우선 지역별 식물원들의 정원식물 전시 및 교육을 통해 지역 특성에 따른 수종을 선정할 수 있어야 한다. 봄철 차갑고 건조한 바람, 여름철 고온다습, 척박한 토양 이 세 가지를 잘 고려해 식물을 선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계절별, 용도별, 수형별, 한국의 기후토양별로 부족한 디자인 소재를 개발해야 한다. 이를 데이터화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개화기에만 정원이 아름다운 편중성을 띠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짚었다.

마지막으로 “정책적 정원 산업 활성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전통정원을 중심으로 한 K-Garden의 재발견

박원순 국립세종수목원 실장은 한국전통정원에서 즐기는 것은 궁궐정원의 누각, 정자, 화계, 취병, 꽃담, 나무, 방지원도, 별서정원에서의 계류, 연못, 정자, 담장, 숲, 바위, 민가정원에서의 꽃, 나무, 약초, 돌담, 숲 등이라며 각각의 사례를 훑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박원순 실장은 한국정원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지나친 상징과 추상, 모호함, 현학주의와 신비주의, 소수의 전유물 등을 꼽고, 한국정원 전문가 부재, 대부분 식물원・수목원이 아닌 공원에 조성되어 식물 컬렉션 등 관리가 어렵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이어 K-Garden이 글로벌 무대를 꿈꾸기 위해서는 ▲한국인의 정서가 담긴 정원, 정원가에 대한 이야기, 한국 고유의 자연·문화·예술과 접목해 서구 문화권에 설명 가능한 K-Garden 모델 개발 ▲전통의 재해석을 통한 K-Garden 감상법을 발굴・소개 ▲새로운 세대와 전 세계인을 위한 ‘한국적’ 인상과 영감을 바탕으로 한 콘텐츠 개발 ▲K-Garden 전문가 양성, 해외 식물원·수목원 적극 교류를 통한 K-Garden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권용진 정원·도시숲본부장을 사회로 K-Garden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오고갔다.

황주영 박사는 “K-Garden에 있어 자생식물도 분명 중요한 요소이지만 해외 현지에서 한국적 요소를 재현할 수 있는 힘을 찾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자생식물에만 치중하다보면 정원이 가진 의미가 납작해질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김명회 대표도 이에 동의하며 “기본적으로 자생식물에 대해 보다 더 공부하고 알리는 것은 필요하다. 해외에 정원을 조성하면 한국의 정원식물에 대해 꼭 질문하고 알고 싶어한다. 해외에 한국의 식물을 알리기 위한 차원에서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최재혁 소장은 한국전통정원 설계시 주안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전통정원을 조성할 때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며, 지향해야 할 것은 ‘다양화’라 생각한다. 다양화를 위해서는 편견을 버려야 하고, 보다 넓은 시각이 필요하다. 우리의 정원을 재해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K-Pop과 민요의 공통점을 찾기 어렵듯 해외문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발현하고 정착한 역사적 측면도 함께 고려하는 것이 동시대의 K-Garden이 될 수 있고, 세계인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실제 조성시 정원디자이너들이 놓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자연 안에서 터를 잡는 지혜, 소박함에서 오는 겸허한 아름다움, 여백이다. 현대에 와서는 더욱 실천하기 어려운 것들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병철 부사장은 “K-Garden이 우리만의 이야기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같은 비용을 내고 영화를 보러 갈 것인지, 정원에 올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을 만큼의 문화로 자리잡아야 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서는 정원문화 콘텐츠를 단순화시키고, 프로그램화하고, 식물과 현지 문화를 접목시키는 작업과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창호 세종수목원장은 “K-Garden에 대해 논의하다보면 정의를 내리고 기준을 만들어 모델화하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즐겁기도 하다. K-POP처럼 먼저 우리 국민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감대가 형성돼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