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학생들에게 해주고픈 가상경관(Virtual landscape) 이야기
김익환 논설위원(이스탄불 공과대학 조경학과 조교수)라펜트l김익환 교수l기사입력2022-09-20
학생들에게 해주고픈 가상경관(Virtual landscape) 이야기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는 튀르키예의 이스탄불 공과대학, 태국의 쭐라롱콘(Chulalongkorn) 대학, 그리고 홍콩 THEi 대학교와 함께 매년 주최대학을 바꿔가며 IWUL(International Workshop on Urban Landscape) 이라는 국제 워크숍을 운영한다. 그리고 올해는 IFLA 참석과 연계를 도모하기 위하여 시립대에서 행사를 했으며, 나 역시 참석차 튀르키예 학생들을 인솔하여 짧게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서울대 환경대학원 석사과정에 다닐 때 동기였던 재호형이, 이재호 조경 학과장으로 시립대에 있는 것이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본인들의 연구 영역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는데, 내 연구 영역과 그 주제에 관해 쭉 듣던 재호 형이, 아니 이재호 교수님의 이야기는 워크숍 기간 내내, 그리고 지금까지 가슴에 뿌듯하게 자리 잡고 있다. 형은 내가 가상공간이니 뭐 그런 걸 한다기에 조경이랑 별 연계가 없는, 그리고 한없이 어렵기만 한 뭔가 기기묘묘한 기술논문을 쓰는 줄로만 알았더란다. 그런데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너야말로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도 조경가스러운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감동이었다.
숙소에 누워서 그 대화를 가만히 홀로 복기를 하자니, 무엇보다도 왜 조경계에서 내 연구가 그리 생소하다고만 느끼는지 의아했다. 형의 말대로, 나의 연구에 활용하는 방법론들이라든가 이론, 참고문헌 등등은 모두 조경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개인의 고집으로 조경의 영역 안에서 솔루션을 찾고자 매번 고민한다. 작업하는 논문의 키워드와 실험들도 기존의 조경 관련 논문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간혹 내 연구나 설계에 주로 활용되는 게임 엔진이라는 프로그램이 낯설다는 사람들도 있다. 게임 엔진이라는 단어가 꽤나 위압적으로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엔진은 도구에 불과하며, 좀 더 진보된 스케치업 정도에 가깝다. 물론 엔진으로 게임을 하나 완성 시키려면 수많은 기능들에 능통해야 한다. 하지만 보통 각자 자신이 맡고 있는 영역에 한하여 엔진을 다루고 있으며, 공간 디자인에 활용되는 게임 엔진은 상대적으로 그 진입장벽이 낮다. 보통 학부생들은 두어달 안에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다. 결국 가상경관(virtual landscape)의 조경이든 실공간에서의 조경이든, 활용되는 방법론은 대동소이하다. 활용되는 이론, 레퍼런스, 사례, 설계방법론.. 물론 약간씩 미묘한 차이가 있기야 하지만, 그건 오징어와 한치 정도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분들께서 지레짐작하는, 오징어와 성게 정도의 차이는 아니다.
실공간 설계와 전자적으로 구현된 공간 설계의 가장 큰 차이점을 굳이 지적하자면, 작업의 최종 결과물이 물리적이냐, 비물리적이냐 정도겠다. 당연한 말이지만, 기존 조경은 그게 시설물 배치든, 무형의 프로그램 혹은 커뮤니티 설계이든 간에 결국 실공간에서 영향을 발휘한다. 그에 반하여 가상경관(virtual landscape)에서의 설계는 결국 비물리적으로 조성된, 전자적으로 구현된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이것이 둘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이자 좁히기 힘든 간극이 아닐까 싶다.
처음에는 이 둘을 메꾸는 방법을 고심하던 적이 있었다. 콘텐츠에서 구현되는 전자적 공간을 어떻게 실공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할 것인가. 그리고 이런 질문의 답은 내 능력 안에서는 매우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가시화(Visualization), 모의실험(Simulation), 게임화(Gamification). 하지만 이들은 결국 가상경관(virtual landscape)을 하나의 도구로 삼는 방법일 뿐, 상호교환이 가능한 전자적 공간이라는 테제의 활용방법이라 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 두 영역은 매우 이원화된, 메울 수 없는 깊은 골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이 두 영역이 하고자 하는 것과 하고 있는 것, 그리고 기원은 의외로 별 차이가 없다.
간혹 아직까지 가상경관(virtual landscape)으로 구현하는 콘텐츠의 한계를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화려한 장비로 고작 만든다는 게 게임이냐는 주장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일전에 썼던 글처럼 이는 새로운 기술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하여 가장 자극적인 형태를 취하는, 요즈음의 현상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좀 더 나아가자면, 결국 조경 역시 사람들에게 휴식과 여가를 제공하는 공간을 조성하면서 시작된 학문과 그 영역이 아닌가? 그 안에서 구현되는 휴식과 여가의 형태가 좀 더 자극적일 뿐, 게임 속의 공간과 센트럴 파크의 설계 방향성은 크게 다른 점이 없다. 다시 말하지만, 오징어와 한치 정도의 차이에 불과하다.
다만 중요한 점은, 가상경관(virtual landscape)이 게임을 벗어난, 진지한 생산성을 추구하는 매체의 수준까지 다다랐을 때 해당 영역으로 뛰어든다면 이미 늦었다는 점이다. 그때가 되면 건축이나 도시설계 등 다양한 영역에서 너도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뛰어들 것이고, 해당 영역을 선점하기는 역시 힘들어질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 발전하고, 자리 잡고, 대중성을 인정받기에는 최소 5년에서 10년 이상의,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요구 한다. 지금, 어쩌면 해당 영역의 시장성이 확고하기 자리 잡지 않은 지금이야말로 공격적인 교육과 투자를 필요로 하는 때이다.
많은 이들이 조경계가 힘들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옆에, 본인들의 전문성을 살려서 많은 수익과 영향력, 학문적 의의를 펼칠 수 있는 드넓은 영역이 있건만, 이상하리만치 관심을 주지 않는다. 심지어 (요즘 한풀 꺾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4차 산업이니, 메타버스니 하는 말들과 함께 한창 사회적 관심이 부상하며 많은 연구 프로젝트 혹은 사업들이 시작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재호 교수님은, 단순히 조경에 관련된 많은 분들에게 가상경관(virtual landscape)이나 게임매체 등이 너무 낯설어서 그럴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여태껏 이러한 요소들은 소위 하위문화라는 인식이 있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많은 이들이 이 영역이 궁금은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할지를 몰라 주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주변에 항상 게임을 한번 해보길 권한다. 무릇 사이트를 알아보려면 답사를 가보아야 할 것 아닌가. 한번 이렇게 물끄러미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역의 잠재가치와 그 현황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게임을 해보고자 해도 기기가 너무 많고 타이틀 역시 너무나도 다양한 탓에 어떻게 시작할지 난감하다면, 우선 플레이스테이션 4(Playstation 4) 구입을 추천한다. PS5도 발매 되었지만 아직 물량이 부족한 탓에 쉽게 사기 힘들고 그 절차도 까다롭다. 하지만 PS4는 가격도 많이 떨어져서 큰 부담이 없으며 매물 역시 많다. 당장 당근 마켓에 들어가도 쉽게 구할 수 있다.
게임 타이틀은, 게임에 전혀 익숙지 않은 분이라면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Detroit become human, Quantic Dream. 2018)을 추천한다. 미래 사회에서 인간과 로봇 사이에서 벌어지는 인권에 관련된 밀도 높은 스토리를 전달하는 게임이다. 버튼을 연속해서 누른다던가 총과 칼을 휘두르는 그런 정신없는 액션 게임이 아니다. 오히려 책을 읽듯이 신중하게 게임을 진행할 수 있어 게임 무경험자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또한 게임 속 배경도시 역시 치밀하게 묘사되어 있어 조경가의 눈으로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참고 이미지. Detroit become human, 2018
혹 그래도 게임에 이미 경험이 있으시거나, 혹은 디트로이트 게임을 즐기고 난 뒤에 좀 더 극적인 경관 활용 사례를 찾는 분에게는 ‘데스 스트랜딩’ (DEATH STRANDING, Kojima production. 2019)을 추천한다. 디스토피아적인 암울한 미래 사회에 택배원이 되어 산과 들, 설원을 오가며 배달을 하는 게임이다. 여러 자연경관들이 아주 역동적으로 연출되며, 게임성 역시 훌륭하다. 참고로 우리 연구실 대학원생들은 필히 해보아야 하는 필수 과제 중 하나이다.(참, 요즘 발매되는 대부분의 게임들은 스토리 모드-라는 이름으로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다. 해당 난이도를 설정하면 본인이 아무리 게임에 문외한이더라도 마치 영화를 보듯 가만히 즐길 수 있다. 그러니 부담을 갖지 말자.)
참고 이미지. Death Stranding, 2019
물론 이런 게임들이나 가상경관(virtual landscape)들이 점점 정교하고 화려해지고는 있지만, 실공간에 피어난 한 송이 꽃만큼의 감동과 의의를 전달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당연하다. 우리 영감의 근원은 실공간에 있으며, 가상경관(virtual landscape)은 메타포의 연속이다. 다만 가상경관(virtual landscape)은 그렇게 그 자체로 의의를 지닌다는 점, 그리고 게임을 넘어서는 보다 성숙한 매체가 도래할 순간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게임만큼이나 이상적인 테스트베드가 없다는 점이 보다 많은 이들에게 공유되길 바란다.
특히 지금 현업에 종사하는 많은 전문가들보다 이제 막 조경을 배워나가는 세대들에게, 그리고 본인의 연구 영역과 주제를 한참 고민하는 많은 대학원생에게 꼭 말해주고 싶었다. 여태껏 없던 드넓은 신대륙이 여러분을 기다리건만, 주저할 이유가 무엇인가. 물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것은 힘들다. 고되고, 눈치 보이고, 서럽다. 불안하다. 주변의 많은 이들이 모험을 권하지 않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빠르게 본인의 전문성과 그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기회이다. 인류사에 이런 기회의 순간이 흔치 않았다.
여태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전공을 살려 사회 구성원이 되기에는 그 선택지가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선택의 폭이 한 단계 더 넓어지고 있다. 게임 업계에 취업하여 레벨 디자이너 혹은 기획가가 될 수도 있다. 해당 업계에서는 실공간에 능통한 사람을 애타게 찾고 있어 그 분야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또한, 기존의 조경 영역에서는 사회초년생이 자신의 아이템으로 창업 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웠으며 실제로 여태 조경학과 졸업생들의 창업률은 미미했다. 하지만 이제 본인만의 아이디어로 전공을 살려 상대적으로 소규모로, 부담 없이 창업하여 새로운 콘텐츠나 서비스, 나아가 플랫폼을 제안할 수도 있다. 심지어 지금 우리는 이런 창업 아이템이 그 아이디어만 적절하다면 무시무시한 속도로 성장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새로운 연구를 꾀하는 연구원이 될 수도 있다. 본 영역은 그 역사가 짧은 탓에 아직 검증이 필요한 아이디어들이 쌓여 있다. 더군다나 많은 연구 아이디어들이 기존의 실공간 영역에서 제안될 수 있다. 여태 본인이 익히고 훈련받았던 방법론과 이론들을 새롭게 확장되는 영역에 적용시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연구를 다양하게 진행할 수 있다. 게다가 기존의 조경 및 실공간에 한하였던 소수의 학술지들 외에도 새롭게 원고를 제안할 수 있는 다양한 저널들과 컨퍼런스 채널들이 있다.
"하지만 저희 학교에서는 가상공간에 대해 가르쳐주는 과목이 없는데요? 어떻게 시작할지도 모르겠어요. 누구한테 물어보나요? 책도 없어요."이런 반응이 당연할 수 있다. 욕심은 나지만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는 분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 다음 글에서 논해보자.
- 글 _ 김익환 교수 · 이스탄불 공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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