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없는 사회와 그 적들 - 2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라펜트l안명준l기사입력2018-07-20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
Part 2: 13 전통 Ⅱ
“전통” 없는 사회와 그 적들
글_안명준 오피니언리더
조경시공연구소 느티 대표│조경비평가
전통Ⅱ: “전통” 없는 사회와 그 적들...
살펴보면 “반 만 년의 역사”를 이야기 하던 우리 사회에서 어느덧 그런 수식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이유가 무엇일까? 보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고고학적 근거와 수치를 차치하면 역사를 강조하던 언사가 줄어든 이유는 모종의 문화적 변화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이제 전통을 촌스러워하지는 않지만 촌스러움(공동체성)에 대한 오해와 편견과 함께 전통(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소중함, 가치)마저 잃어버린 것 아닌가 싶다. 실생활이 되지 못한 전통을 언제까지 우리는 “오래된 미래”라고 미화할 것인가? 무엇이 단절을 강화하고 있는 것인가 생각해 보고 방법을 모색할 때이다.
가벼워진 전통과 물체화 된 전통
소쇄원은 누가 뭐래도 한국을 대표하는 명원이다. 또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명소이고 지금도 각종 문화행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현재적 장소이기도 하다. 쓰임이 많을수록 오랜 것은 손길도 많이, 자주 필요로 하게 된다. 소쇄원도 예외는 아니어서 꾸준한 관리에도 보수가 필요한 부분이 날로 늘어가는 상황이다. 특히 세월에 따라 자라나는 나무와 흙, 돌(물리적으로 흙, 돌과 바위가 커진다는 것이 아니라 켜켜이 의미와 흔적이 그렇다는 것. 오히려 그것은 점차 닳고 풍화되며 가치를 숙성시킨다.)은 정밀한 기반사고와 보전의 원칙에 따라 미리 세워둔 기준에 적합하게 예산 투입과 보수가 진행될 필요가 있다. 이번에도 그러하였다.
문제는 그런 사고와 절차가 소홀히 여겨지면서 발생하였다. 소쇄원만의 독특한 풍경 요소가 섬세하게 고려되지 못한 채 일률적인 기준과 관성화 된 공사 추진이 그 미세한 장소의 전통과 품격을 제대로 훼손한 것이다. 가히 문제의 종합판이라 할 만하지만 제대로 된 처리는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정책의 문제, 업계의 문제, 전문가의 문제 등 우리 시대 문화재를 대하는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났지만, 어떠한 변화와 보완이 이루어졌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오히려 기존의 잘못을 고스란히 용인한 채 문제는 마무리된 듯하다.(관련기사: “소쇄원 담장 색이 이상해졌다”, [중앙일보] 2017.11.25.)
전통은 무형이어서 실체가 언제나 의심되곤 한다. 그것은 앞서도 보았듯 전통 그 자체가 현재의 우리를 기반으로 하는(상정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전통하면 오래된 것들을 먼저 떠올리곤 한다. 전통이 먼저 문화재와 동등하게 비춰지는 것도 그런 배경이 있다. 또한 전통은 오랜 것이라는 시간적 통념이 공유되지만 실상 그 오래의 기준이 제각각이어서 그 기준도 근현대와 그 이전이 섞여 있곤 한다. 여기에 최근에는 문화유산 개념으로 유무형의 전통 가치를 모두 폭넓게 수용하면서 기준은 더욱 모호해지곤 한다.
그렇더라도 문화재와 문화유산은 전통과 문화의 결과이면서 역사와 생활의 얼굴이다. 문화재로 전통을 보는 것도 그러한 이유가 있다. 전통하면 떠오르는 영국은 변화를 싫어하고 오랜 것을 아름답게 여기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심지어 사용하던 물건에 쓰는 이의 애정과 지혜가 담기게 되고, 나아가 “과거의 유물이 미래의 기술보다 낫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문화가 된 전통은 그렇게 과거와 미래를 당겨 현재의 생활이 되고 현재는 그렇게 지금여기로 지속가능해진다. 유산이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의 생활이자 공동체성의 표상이 된다.
현재에 투영된 전통은 그렇게 구체화되면서 형상화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자세와 태도에 ‘미리 먼저’ 담지 되었을 때 가능하다. 전통도 개념이라 생각과 마음이 먼저여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소쇄원을 통해 드러난 우리의 누추한 그것은 그럼 어떤 측면에서 되짚어야 할까. 교양과 교육을 그 시작으로 삼아보면 어떨까?
‘땅의 습관, 땅의 고집’을 살아가는 문화(교양)
전통을 대하는 태도는 북촌 한옥마을이나 전주 한옥마을과 같이 이미 실생활 차원에서 특별하고 중요하게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지난 시절 삿갓으로 상징되던 전통 문화예술의 외형은 보고 즐기고 맛보는 체험 중심의 내용으로 변화된 지 오래다. 거기에 전통을 보호하고 계승하자는 사회적 움직임과 발전과 보편화를 말하는 적극적 주장까지 풍부하고도 다양한 담론이 이미 충분하다. 문제는 그런 생각에 동의하고 거기에서 시작하여 2차, 3차 발전된 생각과 행동까지 이어지 못하여 전통을 대하는 기반에는 여전히 편차가 너무 심한 편이다. 이 편차가 우리의 얼굴이고 문제의 발단이다.
그것은 단순하게만 보더라도 전통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만 보더라도 그대로 드러난다. 즉 문화로서 즐기는 전통을 이해는 하지만 그것을 실천으로, 행동으로 이어가는 공동체적 보편화는 이루지 못한 것이다. 쉽게 말해 보편적 지식이자 교양으로서 자리 잡지 못한 것이다. 평생교육이 벌써부터 우리 사회의 중요 이슈가 되어 있지만 전통과 그에 대한 문화를 교정하고 업그레이드하려는 시도는 많지 않다. 여기에 실마리가 있어 보인다.
한번 자리 잡은 습관과 태도는 쉽게 교정되지 않겠지만 사회문화적 변화는 저변을 형성하며 꾸준히 그 영역을 확장하기 마련이다. 여기에 이웃과 공동체의 역할은 필수적이며, 서로 즐기는 문화로서 전통에 대한 기본적 교양도 그렇게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재, 문화유적에 소풍가듯 관광하는 것이 흥청망청 놀다오기가 아닌 문화유산을 즐기고 현재화할 수 있는 생활이 된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토마스 칸은 전통에 대해 독특하게 강조한다. “나의 오랜 조상들은 내가 존재하기 위해 존재했고, 그들의 위대한 결과인 나를 도우러 올 수밖에 없다.”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식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고 그들에 대한 예의와 존경이 깊은 교양으로서 우러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이것이 지난 시대 계몽하듯 어떤 수단으로서 활용되길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전통이 어떠해야 함에 대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기본 교양으로서 최소한의 태도 변화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말뿐인 선동이 아니라 실질적인 효과를 가져다준다. 손 씻기, 몸 씻기가 보편화되고 예의의 기본이 되면서 개개인 스스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얼마나 건강해지고 오래 살 수 있게 되었던가 살펴보면 충분하다. 전통에 대한 것도 그런 기본 교양으로서 이해될 부분이 있는 것이다.
‘터의 습관, 터의 고집’을 즐기는 사회(교육)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이 바뀔 필요가 있다. 전통의 가치에 대한 교육은 그저 유구에 대한 경외만으로는 부족하다. 좀 더 적극적인 교육 방식 고민이 필요하다. 무자비한 테러집단의 문화유산 파괴 행위에 대해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교훈이 될 만한 사건으로서 우리를 되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전통이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교육에 있어 두 가지 입장이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보편적 진리와 가치 체계가 있고 그것을 전수해야 한다는 결과 중심의 보수적 입장과 교육 받는 사람의 개성과 자율성을 더 중시하여 과정 중심으로 접근하는 진보적 입장이 그것이다. 루소 이후 교육은 기본적으로 관습이나 가치 체계의 주입식이 아닌 인간의 본성에 집중하여 스스로 경험하며 지식을 얻도록 하는 수단으로서 변화 되었다. 이러한 입장은 단순히 소극적 개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에 대한 태도마저 다르게 보게 하여 여러 가지 교육의 방식을 탄생시켰다. 대체적으로 이러한 입장은 지식에 대해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절대적 진리가 없으니 그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 진리 또는 유용함을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교육에 있어 중요하다고 본다.
전통에 대해서도 이러한 두 가지의 흐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절대적으로 고수해야 할 무엇과 스스로 판별하며 가치 부여할 수 있는 능력 사이에서 전통이 어디에 놓여야 하는지, 또 전통의 범위를 어디까지 보아야 하는지 등 많은 문제들이 파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 그러한 정도의 전통 교육을 경험해보지 못하였다. 막연히 보전과 보호를 생각하며 문화유산에 대해 안타까움만 가지는 태도 정도였다면 보다 구체적으로 교육 방법론을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한 바탕에서 문화재, 문화유산에 대한 전반적인 현재적 활용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알다시피 우리가 물려받은 것은 우리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대로 물려주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전통과 관련된 어떠한 방식의 교육도 이제는 단순히 어떤 방향성을 주입하는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스스로 그 가치를 체득하고 그것에 대한 마음가짐과 행동이 어때야 하는지를 일깨워야 할 것이다. 지속가능성은 그러할 때 가능하다.
지금여기의 소쇄원 모습
‘나의 습관, 우리의 고집’을 반추하기
이처럼 전통은 언제나 우리 사회의 교양과 교육에 관계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또 우리 사회의 역사와 문화, 공동체적 지속가능성과도 본질적으로 연관된다. 전통은 진부하리만치 반복적으로 다루어지고 있지만 우리는 정작 그것이 표상하는 우리 스스로의 철학은 외면해왔다. 우리 이제 그런 것 좀 생각할 때 되지 않았는가? 전통은 여전히 “물음을 다시 묻게” 한다.
전통은 낭만적이지 않다. 문화재로 번안된 전통은 개발을 방해하고 현실적 제약이 된다. 번안되지 않는 전통은 현재적이고 창의적일 수 없지만, 지금여기의 현재에 기반한 노련하고 끊임없는 해석은 전통을 온고지신의 가능성이자 담지체(개념)로 승화시킨다. 가깝게는 습관이기도 하고 고집이기도 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작용하곤 한다. 그렇게 가깝고도 먼 전통이지만 생활이다 보니 반추의 대상이 되기는 쉽지 않다. 먼 곳으로 여행하거나 일상과 갑작스레 단절되는 경우에나 그것은 그제야 쉽게 감지되곤 한다.
일상은 습관이라 반추는 쉽지 않다. 시행착오가 누적되면서도 반성 없는 실천이 반복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있다. 각자의 생각은 자유이지만 그것이 모인 담론은 힘을 가지게 된다. 전통은 알게 모르게 힘을 가졌으면서도 제도나 기준, 법률 같은 “강력”이 되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모두의 교양으로 공유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각자에게만 머문 습관과 일상이 생각으로 반추되고 교육되는 문화로 소통되지 못하는 셈이다.
낡은 것이 오래된 것이고, 오래된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문화가 우리에게 절실하다. 우리 이제 좀 그런 생각하며 얘기 나눌 사회가 되지 않았는가? “반 만 년” 역사문화 한번 다시 얘기해 볼 때 되지 않았는가?
- 글 _ 안명준 · 조경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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