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신생과 도시풍경을 위한 ″놀이도시(Ludic City)″ - 2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라펜트l안명준l기사입력2017-08-25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
Part 2: 09 도시 Ⅱ
도시신생과 도시풍경을 위한 “놀이도시(Ludic City)”
글_안명준 오피니언리더
조경시공연구소 느티 대표│조경비평가
도시Ⅱ: 도시신생과 도시풍경을 위한 “놀이도시”...
도시의 변화가 예사롭지 않다. 아니 정확히는 도시를 대하는 관점의 변화이자 큰 도시의 변화일 것이다. 거기에는 지난 시대 우리 삶을 이끌어 준 경제와 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논리가 가득 있다. 우리는 쉽게 놓치지만 도시(urban, 삶터)는 농촌이기도 하고 마을이기도 하고 메트로폴리탄이기도 하다. 그러니 큰 도시 일부의 변화가 모든 도시 변화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마을의 변화, 삶터의 변화가 더 본질에 가깝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삶과 관련된다. 그 삶이 놀이라면 어떨까?
삶터 놀이 전문가가 필요하다
우리식의 압축성장 문제는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중 도시와 삶터 분야에서의 문제는 지금부터라도 본격적으로 살펴야 할 부분이다. 삶의 환경이 결국 삶의 양태와 행복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효율성과 경제성 중심으로 이루어 놓은 우리 주변의 모습은 그만의 역사와 배경이 충분히 이해될 만하다. 그러니 지난 과거를 문제 삼아서는 곤란하다. 중요한 것은 지금을 어떻게 보아야 하고 여기를 어떻게 읽어야 하느냐이다. 그것은 좋은 질문을 찾아내기 위함이고 그러할 때 좋은 해답과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압축성장의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그 장점을 우리는 중요하게 먼저 따져봐야 한다. 그 중 빠른 물리적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문화와 정서의 문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 점은 우리에게, 특히 한국이라는 특별한 상황에서 중요한데 형식과 내용 사이의 새로운 지향을 찾을 수 있는 우리만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어렵게 말했지만 한국적 상황이 가진 가능성이, 특히 도시문제에 관련한 해법의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문제를 공유하는 것을 기본으로 그간의 방식이 아니라 문화와 정서에 기반을 둔 새로운 것(지구상에서)이어야 할 것이다.
삶터 주인공들의 공간놀이, 도시놀이
문제는 그에 관한 전문가가 없다는 것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이와 같은 상황을 경험해본 전문적 식견의 누군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아니다. 현장에서 상황을 인식하며 지향을 공유하며 소리 없이 활동하는 전문가는 생각보다 많다. 전문가가 없다는 것은 일을 시작시킬 정책이나 행정 측에서의 이야기이고 전문가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은 주민과 함께 무언가 열심히 실행하고 있는 현장 측에서의 이야기이다. 그렇더라도 여전히 이 전체를 조율하고 조정하며 진화를 이끌 제대로 된 전문가가 부족함은 여전하다. 그간 수많은 도시재생, 마을만들기, 장소만들기 등의 삶터 관련 전문가와 실행자들이 우리식의 해법을 정확히 지적하지 못하는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함께 공유하며 논의할 주제 또는 지향점이 불분명하거나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주제는 도시마다 활동가마다 주민마다 다르고, 또 모두가 지향해야 할 모습은 지구상에서 여기가 처음 시도이니 아직 분명하게 존재하지도 않는다. 여러 사례 연구가 있음에도 딱맞춤이 있을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도시에서 즐겁게 놀지 못한다는 점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압축성장의 도시에서 우리의 삶이 그러했음에서부터 생각은 시작된다. 도시가 더 이상 느끼고 즐길 수 없는 공간이 되어 버렸다는 점, 소유와 그리드락으로 얽힌 공간들에 둘러싸여 정작 중요한 것을 뒷전에 두었다는 점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할 주제이다. 송죽동에서처럼 자발적으로 지속가능한 마을을 형성해 가는 주인공들의 도시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즐기는 도시가 먼저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도시는 놀이의 대상으로 다시 태어날 필요가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우리 문화와 정서의 저편으로 밀려난 놀이의 회복은 공감의 폭이 넓고 문제의 근원과 가깝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우리 도시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거대 프로젝트의 기획자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상황에 적합한 경험 있는 (도시) 놀이 전문가가 필요한 셈이다.
놀이도시(Ludic City) 철학의 필요성
압축성장을 다시 한 번 돌아보자. 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의 어디쯤에서 우리 정서와 문화의 특성이 잡힐 것이다. 이것이 우리 도시가 가진 문제 발견의 근본적 지점이 되어야 한다. 그간의 이론은 일단 접어두자. 그 이론으로 갖추어진 물리적 체계와 구조는 이미 넘치고 넘치니까. 중요한 것은 겉만 채우며 놓친 내용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로 다시 돌아오게 되니까 말이다.
변화가 필요한 것은 물리적이든 내용적이든 모두가 공감하는 바이니 그에 대한 검토는 건너뛰고, 그럼 어떤 것을 주제로 삼아 고민해야 할지를 먼저 공감해야 한다. 결론부터 말했지만 우리 도시는 그간 즐길 수 있는 삶터로 성장하지 못한 바가 크니 지금부터라도 놀며 즐기고, 느낄 수 있는 도시를 지향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을 “놀이도시”로 불러 본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하다. 한 때 장소만들기가 유행했듯, 삶터가 물리적 도시로만 작용하는 도시 내 삶의 내용들을 진화시켜보자는 그 주제의 연장으로 볼 수 있다. 도시는 이미 물리적 공간들로 꽉 차있고, 그 꽉 찬 공간을 장소로 변신시킬 이유는 충분하다. 다만 그 실행의 테마와 방향이 우리 실정, 즉 우리식의 공동체성에 맞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부터라도 거기에서부터 경험과 철학을 논해야만 한다. 물론 도시의 낙후성과 벌써 낡아버린 물리적 구조물에 대한 우려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이미 그것을 활용할 기술이나 방법은 충분히 경험한 바 있으니 순위를 뒤로 두고 본질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놀이도시는 가속화 되어온 성장의 시기에 논의 되었어야 할 도시의 테마이자 철학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중요한 부분이다. 다시 말하면 실천적으로 보아 우리 도시에는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다. 놀이는 그것을 담는 너무도 쉽고 근본적인 삶의 부분이자 형식이고, 방법이며 지향인 것이다.
놀이는 창조의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실질적으로 아이를 어른으로 성장시키는 길이고, 또래가 어울리거나 세대 간 소통의 장이기도 하다. 어색함을 가시게 하기도 하지만 끝도 모를 집중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또한 놀이의 모든 것이 사람 중심이라 그 주변도 그렇게 변하기 마련이다. 도시에 놀이가 먼저 되살아나야 한다는 점은 이제 정말 누구나 모두가 심도 있게 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현장을, 삶터를 관조하며 훈수하듯 지식과 학문, 권위의 힘으로 주민과 시민을 지도하려 했던 지난날의 전문가들에게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정책 또한 그래야 한다. 현장은 전쟁터가 아니라 삶터이다. 그리고 놀이터이기도 하다. 거기에 서 있는 모두는 그저 삶을 함께 공유하며 즐기는 동등한 주민이자 시민일 뿐이다. 다시 말해 모두가 주인공이자 모두가 술래인 것이다.
놀이터로, 삶터로 변신한 마을 송죽동
삶을 부르는 도시, 삶터가 되는 도시를 위하여
우리는 “좋은 도시의 조건을 천천히 걸으며 5초에 한 번 정도씩 흥미로운 장소를 볼 수 있는 거리”를 가진 것으로 보아왔다. 물리적으로 공간 간의 연속성이 그래야 한다는 점은 이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다양성과 통일성 사이에서 공유하는 삶터의 아름다움을 함께 고민해야 도시의 신생과 도시의 풍경화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압축성장 기저의 근대적 도시공간 위계(http://www.richardrogers.co.uk)
도시의 구조를 바꾸고 낡은 것들을 치워내며, 가로와 도로의 체계를 손보는 등 그간 흔하게 추진해온 개발의 방식으로는 내용과 이야기가 먼저인 삶터의 변화를 이끌 수 없다. 그것은 여전한 자본과 성장의 논리를 드러낼 뿐이다. 소위 도시재생은 이 점을 충분히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물량으로 승부하는 장소만들기, 마을만들기는 쓸데없는 다툼과 과열되는 경쟁, 주민 간 반목, 전문가 불신, 경험의 파괴, 자본 속성의 강화 등 문제만 키울 뿐이다. 따라서 그간의 물리적 구조에 적응하며 살아온 우리만의 정서적, 감정적 속성을 이해하고, 아직 남아 있고 우리만의 특성을 형성한 공동체성에 기대하며, 자발적으로 스스로의 환경을 돌아보고,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문제를 찾아 토론하고 바꾸도록 지원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더라도 그렇게 차근차근 해나갈 때 우리식의 새로운 도시 만들기가 가능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교재와 매뉴얼이나 주민 교육, 주민 체험 등 이미 충분히 검증을 거친 결과들에도 주목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주민과의 사이에서 얻은 몇 가지의 다음과 같은 현장 경험은 소중하게 기억해야 한다. 2013년 서울시 골목길 가꾸기에서 마을만들기 선배 전문가들이 참여 조경가들에게 전한 전문가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과 전문가의 마음가짐에 대한 조언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것은 이와 같이 관련 분야의 경험이 소중함을 상기하기 위함이다. 새겨들어야 한다!
<시민의 전문가에 대한 생각> 김은희, 도시연대 사무처장, 2013- 전문가는 외국 사례를 좋아한다.- 전문가는 말을 어렵게 한다.- 주민설명회를 하고 나면 더 헷갈린다.- 전문가가 오면 주민들은 바빠지고 피곤하다.- 전문가는 묻기만 하고 결과를 알려주지 않는다.- 전문가는 리더만 찾는다.- 남의 동네에 와서 가르치려고만 한다.- 자꾸 바꾸려고 한다.- 보여준 그림과 설치물이 다르다.- 관리가 어려운 시설을 설치한다.<함께 하는 디자인>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2013- 주민은 수동적 소비자가 아닌 주체이며 의사결정자- 주민참여라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주민을 중심에 둔다.- 전문가적 자의식을 갖고 소통을 통한 공동의 이해 추구- 끊임없이 사람들의 관심 촉진(갈등 예방 및 책임감 공유)- 설계안 수정 및 확정의 과정은 순환적 과정- 예상치 못한 상황에 열린 과정- 쉬운 언어 쓰기- 소통의 과정 자체가 마을의 이벤트가 되도록, 문화가 되도록, 주민들의 문화행사와 결합
그리고 사업을 촉발시켜야 하는 행정 실행의 과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통합적 실행 체계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도시재생지원센터가 그 중간 조직으로 활동하지만 결국에는 부처 간 업역 문제에서 회의와 협의에 시간 뺏기느라 정작 삶터 주인공들과의 소통은 한 참 뒤로 밀리기 마련이다. 그 사이에 벌어지는 낭비가 얼마인지 차라리 그것만을 지원하는 것도 우리식 삶터 신생, 놀이도시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거대 담론으로 이목을 끄는 것보다는 정책적으로 이러한 낭비를 줄이도록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나머지는 삶터의 주인공들에게 공을 넘기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젠트리피케이션이나 지역 경제 회복 같은 본질을 빗겨난 문제의식은 뒤로 두고 우리 지금 여기 삶터에서 벌어지고 있는 신종 3D 직업인 마을활동가, 현장 퍼실리테이터, 튜터 등에 대한 적절한 지위와 대우 그리고 적절한 지원책이 반드시 먼저 필요하다는 점이다. 정부는 그들에게 성패가 달림을 명심해야 한다.
- 글·사진 _ 안명준 · 조경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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