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조경학에서 이런 연구들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것도 터키에서.
김익환 논설위원(이스탄불 공과대학 조경학과 조교수)라펜트l김익환 교수l기사입력2022-02-24
조경학에서 이런 연구들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것도 터키에서.
나는 가상공간의 공간 설계에 대한 연구를 한다. 최근 조경계에서 가상공간을 활용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도들은 대부분 가상공간을 비쥬얼리제이션(Visualization), 시뮬레이션(simulation)과 같은 도구로 삼아 실공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설계, 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에 반하여 내가 하는 연구는 가상공간이 목적이 되고 기존의 조경설계기법과 사례들은 수단이 된다. 어떻게 하면 상호교환이 가능한 가상공간을 보다 흥미롭게, 혹은 효율적으로 설계하여 구현할 것인지에 대하여 기존의 실공간 설계기법 등에서 그 실마리를 찾고 있다.
지금은 4차산업이나 메타버스와 같은 단어들과 함께 다들 그 필요성을 동의하고 있지만, 내가 박사 과정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만 하더라도 그리 많은 분들에게 공감받기 어려운 주제였다. 조경가가 콘텐츠를 설계하는 것을 회의적으로 보시는 분들도 꽤 많았다고 기억한다. 그런만큼 박사를 졸업하고 어떤 진로를 계획해야 할지 많이 곤혹스러웠다. 조경의 영역 안에서 활동을 하고, 누구보다 조경인들에게 이 새로운 영역을 소개하고 싶었다.
그렇게 졸업을 앞두고 고민을 하던 와중에 터키 이스탄불 공과대학에서 연락이 왔다. 아주 의외였다. 개발도상국인 터키는 자국은 물론이거니와, 전세계를 대상으로 다양한 건설 시공을 진행하여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외화를 적극적으로 벌어들이고 있다. 그런데 연락이 온 학교에서 말하기를, 물리적 공간의 건설경기는 조만간 점점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조경학의 활용 영역을 넓힐 수 있는 준비를 지금부터 하고 싶다고 하였다. 놀라웠다. 그리고 그런 활동 영역은 향후 비물리적인 공간, 가상공간이 되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나라가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아 큰 연구비를 지원해주지는 못하겠지만, 자유롭고 안정적으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환경을 약속하였다.
그렇게 나는 터키로 오게 되었다.
이스탄불 공과대학(İstanbul Teknik Üniversitesi, ITU)은 터키의 카이스트와 같은 곳으로, 1773년에 개교를 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5대 공학대학 중 하나이다. 지금은 종합대학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이스탄불 여기저기에 단과별로 캠퍼스들이 흩어져있다. 그 중 조경학과는 건축대학 소속으로, 한국의 광화문 광장과 같은 탁심(Taksim) 광장 바로 옆에 자리한 타스키스라(Taskisla) 캠퍼스에 위치한다.
ITU Taskisla 캠퍼스 건축대학 전경. 본디 군 훈련소이자 야전 병동이었다. / image from CAAD FUTURES 2017
이슬람이 국교는 아니지만, 종교적 색채가 꽤나 선명한 나라인만큼 초반에는 사뭇 긴장하였다. 하지만 크게 이질적인 모습은 되려 찾기 힘들었다. 돼지고기를 구하기 힘들다는 정도. 그리고 앞서 언급하였듯이, 나라가 경제적으로 한창 발전을 꾀하고 있는 탓에 자잘하게 불편한 점들이 없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만큼 학생들이 아주 의욕적이다. 학생들이 사명감을 지니고 학교를 다니며 연구에 임한다. 지켜보고 있노라면 우리 아버지 세대의 분들이 이렇게 공부를 하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학생들과 함께 나는 이런 연구들을 진행하고 있다. 조경학과에서 이런 연구들이 진행될 수 있음을 공유하고 싶어 밝힌다.
첫 번째로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조경설계 실습과목에 가상공간 설계를 가르치고 그 과정과 결과를 연구하고 있다. 실공간과 가상공간은 설계 영역으로서 사뭇 다른 특성이 있는데, 해당 차이점의 이해를 전제로 해야 효율적으로 실공간에서 활용되는 설계기법을 응용할 수 있다. 그 차이점과 가상공간 설계 방법론 등을 매 학기 학생들에게 교육하고 있다. 학생들은 아주 열성적이다. 졸업 후 설계 사무소에 취업하는 것뿐만이 아닌, 게임 회사 등 다른 기회를 가질 수 있음을 깨닫고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한다. 이들의 교육과정과 결과 등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분석을 하고 논문을 출판하였다.
두 번째는 기존에 발매된 게임 혹은 기타 콘텐츠 속에 구현된 공간들의 분석이다. 조경가의 시선에서 어떠한 부분들에 아쉬움이 남는지, 반대로 조경가들이 향후 응용할 수 있는 공간의 구성을 살펴보고 있다. 여태 수많은 게임들이 발매되고 그만큼이나 다양한 공간들이 소개되어왔기에 본 연구는 빅데이터 구축과 분석이 중심이 되고 있다. 본 연구는 비단 조경가들뿐만이 아닌 게임과 같은 콘텐츠를 만드는 기존의 전문가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있으리라 믿는다. 해당 논문은 곧 발간되는 디지털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쳐 컨퍼런스(Digital Landscape Architecture conference; DLA 2022)에 출판된다.
세 번째는 역사적인 유적을 가상공간에 재현하는 복원 프로젝트이다. 터키 중부에는 쿨테페(Kultepe)라는 지역이 있다. 이곳에는 최초의 철기를 활용했다고 알려져 있는 히타이트국의 대규모 유적지가 남아있는데, 해당 사이트를 가상공간에 복원하는 작업이다. 단순히 도면을 공간화하는 것으로는 어색한 부분이 많기에 다양한 조경설계기법을 응용하여 보다 현실적이고 몰입감이 제공되는 공간을 설계하고자 한다. 본 프로젝트는 유럽현합(EU)에서 펀딩을 받고 있으며, 앙카라 대학교와 협업하여 진행되고 있다.
네번째는 케빈 린치의 공간이론을 가상공간에 적용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이다. 린치는 위요감의 특정 비율과 그 효과 등을 공식화하였는데, 해당 공식들이 가상공간에 동일하게 적용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만약 불가능하다면 어떤 요소들 때문에 정확하게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는지를 분석하는 실험을 진행하였다. 임승빈 교수의 연구가 주된 레퍼런스로 활용되었다. 연구의 결과가 꽤나 흥미로웠는데, 이 역시 곧 발간되는 DLA 2022에 출판을 앞두고 있다. 조만간 기회가 된다면 따로 소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외에도 아직 결과가 확정되지 않아 본 지면에 공개하기는 힘들지만 흥미로운 연구가 많음을 말하고 싶다. 혹자는 뭘 이리도 잡다한 연구들을 이것저것 건드려보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경학이란 결국 사람들의 행동과 감정을 효율적으로 유도하는 방법에 관한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수목과 자연물을 주로 다루기는 하지만 이들은 그러한 방법을 수행하는 다양한 도구들 중 하나라고 믿는다. 그리고 우리가 보다 다양한 도구를 폭넓게 활용할 수 있다면, 여태 조경학의 범위에 포함시키길 꺼렸던 다양한 영역들을 우리는 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라펜트에서 기회를 제공해주어 본 칼럼은 격월로 향후 수 회에 걸쳐 연재된다. 뭔가 엄청난 서사나 획기적인 학문적 발견을 논하기에는 어려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낯선 외국에서 조경학의 영역을 넓혀보고자 고군분투하는 이야기 정도는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이러한 시도들에 자극을 받은 사람들이 향후 그런 획기적인 발견과 서사를 써내려 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 글·사진 _ 김익환 교수 · 이스탄불 공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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