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환경_ 어울려 즐거운 ‘환경’: 분절없는 삶터(下)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_12회‘환경 표절’과 생태복제주의
문화와 예술을 중시하는 인간 활동일수록 다른 사람의 결과물을 그대로 베끼는 것에 큰 반감을 가지기 마련이다. 표절은 남의 것을 훔치는 것과 같은 행위로 받아들여지며 사회적 지탄을 받기도 한다. 남의 생각을 제 것인 양 쓰는 것이 심각한 문제임은 분명하다. 이러한 표절이라는 관점을 환경에도 적용해 볼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환경 표절, 생태 표절은 결국 환경설계의 자기 정체성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점을 성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묻는 이유는 하나다. 자연을 복제한 환경을 인공물과 같은 관점에서 판단할 수 있느냐 하는 점 때문이다. 많은 환경설계가들이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베껴 만드는 것에 전문적 역량을 발휘하지만, 과연 그것이 적절한 해결책인가에 대해서는 쉽게 질문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본질적으로 환경설계 행위가 적절한가에 대한 문제의식도 포함한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패션처럼 유행하는 도시 하천의 생태적 복원 사례들을 보면 그렇게 재생해 놓은 개성 없는 환경들이 과연 가치 있는 것인가 되묻게 하기도 한다. 지역성과 장소성을 무시한 유행 같은 하천 개발은 어쩌면 환경과 생태에 대한 표절이자 복제주의일 뿐 진정한 삶터로서의 의미는 오히려 퇴색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자연의 작동 원리를 충분히 모사하여 붕괴된 자연에 새로운 자연을 도입한다는 점에서 환경설계는 충분히 의미가 깊다. 그러나 자연의 전체적 작동 원리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겉모양만 베끼는 것은 여전히 인간 중심적인 행위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형식만을 고려한 환경설계는 표절로 낙인되며 비판받는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표절이 작품으로서의 원본성을 상정하는 개념이라는 점에서도 이는 충분히 인정할 만하다.
한 가지 더, 환경의 표절은 자연으로부터 시작된 창의적 베끼기가 아니라 잘못된 환경설계물에 대한 베끼기일 때 더욱 노골적인 것이 된다는 점이다. 대상지의 특성과 전체 생태의 가능성에서 출발하지 않고 그저 어디에나 놓일 수 있는 무장소적 디자인에 기초한 표절 또한 심각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대상지의 자연에서 출발하지 않고 인간의 생각과 감각에서만 출발하는 환경설계 또한 이에 해당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성찰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 생태를 닮은 환경은 친환경이라며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생태복제주의가 ‘환경문제’의 시대에 환경설계의 중요 테마가 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환경과 생태의 통합을 위하여
환경을 살피며 생태를 언급하는 것은 이제 너무도 당연하게 되었다. 그것은 환경이 너무도 강력한 인간 중심의 사고로 고착되었기 때문이며, 유연한 접근을 위해 폭넓은 관점과 방법론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생태를 고려하는 것은 환경의 무관심적 객관성에 분명한 판단 기준을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경과 생태에는 분명한 입장의 차이가 있다. 환경을 중심으로 하는 환경주의가 “현대의 사회적, 정치적 생활양식을 변화시키지 않고서도 환경을 잘 관리하면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면, 생태를 중심으로 하는 생태주의는 “환경 보호와 관련한 사회적, 정치적 생활양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전제”하며, “자연의 물리적 한계가 존재하며 인간의 발전은 그 수용 범위와 능력 안에서 가능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환경과 생태가 취하는 이러한 기본적 위상 차이는 이제 반성적 환경론을 불러오며 새로운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중 하나는 반성적 환경으로 보는 관점이 현대 도시 문제의 핵심을 꿰뚫기도 한다는 점이다. “장소가 가진 문화적, 역사적 특수성은 붕괴되었다. 이제 보편적이고 연속적인 공간, 추상적이거나 위치로서만 존재하는 공간이 지배하게 되었다.”는 비판적인 상황인식은 환경을 이해하는 과거의 관점이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준다. 도처에서 이러한 반성은 가시화되고 있다.
자 이제 잠깐이나마 실천의 상황을 보자. 환경을 대하는 가장 진보적인 입장과 원칙은 아이러니하게도 기후변화가 심각하게 다가오는 곳이 아니라 비교적 안정적인 삶터를 유지하고 있는 유럽에서 먼저였다. 유럽연합 환경정책의 목표(EGV, 유럽공동체법 중)는 그것들 중 핵심이 되는 사항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환경 보호와 보존 및 그 질의 향상, 인간 건강의 보호, 자연 자원의 이성적인 사용, 지역적·지구적 환경문제 극복을 위한 국제적 차원의 조치 촉구”를 목표로 상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는 기본 원칙(174조 2항)으로는 “1) 예방의 원칙, 2) 근원지 교정의 원칙, 3) 오염자 또는 원인자 부담의 원칙, 4) 통합의 원칙(협력의 원칙)” 등 네 가지를 들고 있다.
우리 삶터에서 이것을 단번에 실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부터 시행착오를 고려한다면 환경에 감추어진 우리식의 환경론이 제 모습을 드러내며 제 방향을 찾게 될 것이다. 에른스트 헤켈(E. H. Haeckel)이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고 강조하였듯, 그들의 발걸음은 우리의 발걸음을 바르고 쉽게 하는데 큰 울림이 되어줄 것이다.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이 가이아(Gaia)를 강조하며 “지구 시스템인 가이아가 선택을 할 수 있다면 현재의 비교적 따뜻한 기후가 아니라 빙하기의 추위를 더 선호했을 것 같다.”는 지적을 곱씹어야 한다. 그가 “지구에 해 될 일은 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불도저와 전기톱, 다량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모든 장비”에 붙여야 한다고 강변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그가 사랑한 ‘멋진 시골(good countryside)’을 떠올리며 우리 환경을 되짚어야 한다.
“‘멋진 시골’이라 함은 지구와 조화롭게 살아가는 농경지와 공동체를 뜻하며, 비록 인간 중심이긴 하지만 숲, 생울타리, 초원이 자랄 충분한 공간이 있는 생태계를 나타낸다.”
- 연재필자 _ 안명준 조경비평가 ·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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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_ 나창호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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