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론] 조경(造景)이라는 말

김영민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라펜트l기사입력2021-08-12
조경(造景)이라는 말


_김영민(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





원림, 조원, 그리고 조경

조경(造景)은 영어 "Landscape Architecture"의 번역어이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도 정원을 가꾸었고 경관을 경영해왔지만, 현대적 의미의 전문 분야나 학문으로서 조경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조경의 개념이 정립된 미국에서 쓰는 용어를 수입해왔고, 새로운 이름을 붙여줘야 했다. 이는 같은 한자를 쓰는 중국도,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19세기 말 일본인들은 서양에서 들여온 개념들을 새로운 한자어로 번역을 하였고, 이들 대부분은 중국과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수용이 되었다. 하지만 조경만큼은 동아시아의 세 나라가 각각 다른 이름을 붙였다. 중국은 예로부터 정원과 숲을 의미하던 "원림(園林)"이라는 말을 썼고1), 일본은 정원을 만든다라는 의미의 "조원(造園)"이라는 말을 선택했다. 우리는 조경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우성백 우리나라에서 조경이라는 말이 정착되는 과정을 네 가지 정도로 분석하고 있다2). 그런데 우리가 선택한 조경이라는 말이 담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빛과 그림자, North Carolina Museum of Art Stormwater Pond ©Surface678 / Art Howard


만들다(造)

조경은 만든다는 의미의 동사 조(造)와 만드는 대상인 명사 경(景)으로 이루어진 단어이다. 한자에서 만든다는 뜻의 단어는 꽤 많은데, 조(造)는 그중에서도 단순하고 직설적인 의미의 만들기이다. 예를 들어 비교하자면, 건축(建築)이라는 말은 만든다는 의미 동사 두 개로 이루어지는데, 건(建)과 축(築) 모두 특수한 만들기로서 조(造)보다는 더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반면, 영(營)은 계획하다라는 뜻을 품은 단어로써 조(造)보다는 심오하면서 중의적인 느낌의 만들기이다. 한·중·일의 옛 문헌에서는 영조(營造), 영건(營建)이 공간을 만드는 의미의 단어로 많이 쓰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궁과 성의 건설을 담당하는 관서의 이름은 영건도감(營建都監)이었으며 영건의궤(營建儀軌)는 대표적인 조선의 건축서이다. 북송시대의 이계(李誡)가 편찬한 유명한 건축서적의 이름은 영조법식(營造法式)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건(建), 축(築), 영(營)과 같은 말에 비해 조(造)는 물건, 농사, 글, 조직 등 모든 종류의 만들기에 적용되는 범박(凡朴)한 말에 가깝다.

원래 일본에서 건축의 이름은 정원은 만든다는 조원처럼 집을 만든다는 의미의 조가(造家)였다고 한다. 일본의 건축가들은 조가라는 말을 매우 못마땅해했다. 일단 건축의 대상을 집(家)에 한정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지만, 조(造)라는 말이 너무 평범한 만들기나 기술적인 짓기처럼 느껴져 예술적인 창조행위를 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야나부 아키라에 따르면 서양어를 번역할 때 소위 표현이 구체적이지 않고 의미가 생경한 신조어를 선호했는데, 평범하기 그지없는 동사와 명사로 이루어진 말은 소위 말해, 그리 있어 보이진 않았고 조가가 그러하였다3). 결국 20세기에 들어 조가는 건축으로 대체된다. 

일본에서 20세기 초 "조원학"이라는 명칭의 강의명이 나타나고 동경 일대에 공원을 조성하는 계획이 세워지면서 공문서에 조원이라는 말이 공식적으로 등장하였다고 한다. 일본의 건축가들이 조가라는 말을 못마땅해했던 것처럼 오늘날 일본에서 조경을 하는 사람들도 조원이라는 말을 썩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것 같다. 요즘 많은 조경가들은 조원을 전통 정원과 관련된 일에 한정해서 사용하고 있으며, 오히려 영어 "Landscape"를 소리나는 대로 쓴 "란도스케이프(ランドスケ一プ)"가 조경을 지칭하는 말로 더 널리 쓰이고 있다고 한다. 중국의 조경가들에게도 조경이라는 말이 어떠냐고 물으면 비슷한 반응이다. 동사와 명사로 구성된 단어 구조 자체가 예스럽다고 한다. 특히 조(造)라는 범용적인 동사가 개성이 없어서 오히려 예술적인 창작보다는 기술적 제작이나 시공에 가깝게 느껴진다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빛과 그림자, North Carolina Museum of Art Landscape ©Surface678 / Art Howard


볕 경(景), 혹은 그림자 영(景)

조경에서 경(景)은 조경의 대상에 해당한다. 경(景)은 조경학계에서 가장 논문의 편수가 많은 연구주제를 꼽으라면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개념이다. 한·중·일을 막론하고 연구자 대부분은 북송 때 소상팔경(瀟湘八景)에 기원한 팔경(八景)의 개념에 근거해 경을 설명한다. 그런데 견해도 다양하고 고문헌을 분석 내용도 너무 전문적이어서 많은 논문을 읽다 보면 경의 의미는 더 알 수 없게 된다. 오히려 오늘날 가장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경의 의미는 팔경보다 경관(景觀)에 더 가까울 것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봐도 경은 "산이나, 들, 강, 바다 따위의 자연이나 지역의 모습"으로 경관과 뜻이 같다. 현대 중국어에서도 경은 풍경, 경치, 경관과 거의 같은 뜻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조경의 대상인 경을 오늘날의 경관이라고 하면 조경의 범위가 생각했던 것보다 좁게 느껴진다. 경(景)에 본다는 의미의 관(觀)이 붙어버리면 조경이 시각적인 풍경만 다루게 되는 느낌이다. 옛날 경의 의미에 맞추면 그 범위가 너무 넓어지고, 오늘날 통용되는 경의 의미에 맞추면 그 범위가 너무 작아진다. 

일본의 조원대사전을 보면 경의 의미가 조금 다르게 설명되어있다.

"양지와 음지, 그늘과 햇빛의 관계이고 시간의 추이를 말하는 것으로 풍경은 토지와 관계가 없다. 빛이 존재하는 곳은 그늘의 빛(陰光)이 되고, 이것을 경(景)이라고 한다. 빛 가운데의 그늘을 영(影)이라고 한다. 영은 경의 다른 말이다. 빛이 눈에 비치고 사물에 반영되는 것, 이것이 원래 경(景)의 의미로 오늘날에는 풍경으로 사용된다4)."

경이라고 하면 보이는 풍경, 혹은 보는 경관이라고 생각해온 우리에게 이러한 정의는 꽤 낯설다. 철학적으로 들리기도 하고 시적인 감흥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경(景)이라는 말의 원래 의미를 보면 오히려 조원대사전의 정의가 거의 단어의 직역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경(景)을 한자 자전에서 찾아보면 경은 볕과 그림자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갖는 한자어이다. 볕을 의미할 때는 경으로, 그림자를 의미할 때는 영으로 읽는다. 같은 글자가 두 가지 의미를 지녀 혼동이 될까 봐 터럭 삼(彡)을 붙어 그림자 영(影)으로 따로 쓰기도 하는데 실은 같은 단어이다.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볕과 그림자는 반대인데 한 단어가 상반된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당연하기도 하다. 그림자라는 것은 볕이 있어야 생기니 볕과 그림자는 따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없다. 볕과 그림자는 모두 우리가 경험하는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다시 말해 볕이 없다면 우리는 대상이 있어도 인식할 수가 없고, 그림자가 없다면 사물의 윤곽을 파악할 수가 없다. 한 장소의 분위기도 볕과 그림자를 통해서 생긴다. 낮게 깔린 구름의 그림자가 볕을 무겁게 를때 우리는 흐린 날의 우울함을 느낀다. 해 질 녘의 황홀함은 볕의 시간이 끝나기 직전의 볕의 강렬함과 그림자의 강렬함이 충돌한 결과이다. 볕과 그림자는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하루의 시간에 따라서도, 계절에 따라서도 볕과 그림자의 관계는 변화하며 무수히 많은 경(景)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조경이 경(景)을 만든다는 것은 사물을 넘어, 사물을 경험하게 하는 전제 조건을 다룬다는 것이고, 볕과 그림자의 관계에 따라 만들어지는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 모든 것을 시간의 흐름 안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빛과 그림자, Brooklyn Bridge Park ©MVVA / Alex MacLean


빛과 그림자, Brooklyn Bridge Park Pier 2 ©MVVA / Scott Shigley


조경, 경(景)을 만든다

조경은 경을 만든다는 것이다. 대상인 경은 어렵다. 행위인 조는 쉽다. 경은 섬세하고 중의적이다. 조는 단순하고 범박하다. 경은 돈오(頓悟)의 상(象)이며 조는 점수(漸修)의 길(道)이다. 경은 시(詩)이며 조는 술(術)이다. 그래서 조경은 가장 어려운 공간과 시간의 관계를 가장 쉽게 만드는 행위이다. 그것이 조경이라는 말이 담고 있는 뜻이다.

이는 조경의 본래의 뜻은 아니다. 처음 조경이라는 말을 만든 이를 확정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명명자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이것은 단지 하나의 해석일 뿐이며, 어쩌면 글자 풀이나 말장난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조경을 하는 그 누구도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조경을 생각하거나 해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말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고 믿는다. 벤야민(Walter Benjamin)은 말과 사물의 관계가 우연히 자의적으로 만들어졌다는 현대 언어학의 주장을 반박한다. 그는 말이 근원적 인식의 행위와 같으며 인간은 말을 통해 사물과 근원적인 관계를 맺는다고 생각했다5). 창세기에서 아담이 사물의 이름을 짓는 행위는 창조주의 창조와 같은 의미가 있다. 유대인들은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에서 시작되었다고 믿었다. 인간의 말, 아담의 언어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신의 능력을 모방한다. 

조경이라는 말을, 그 이름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많은 것들이 부끄러운 사람들도 있고, 그것이 조경이라는 말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조경이라는 이름이 좋은지 나쁜지는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 조경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는지, 걸림돌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어찌 되었건 우리는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50년을 이 일을 해왔다. 조경이 무엇을 하는 것이냐고 물었을 때, 너희가 50년간 해온 일이 무엇이냐고, 혹은 너희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모두가 조경이 꽤 괜찮고 멋진 일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럴듯한 대답 하나 정도는 있으면 좋겠다. 


빛과 그림자, Birmingham Residence ©Andrea Cochran Landscape Architecture


빛과 그림자, Portland Japanese Garden ©Roman Johnston


빛과 그림자, 창덕궁 후원 연경당 ©문화재청 / 홍효진




1) 북한에서도 중국의 용례를 따라 조경을 원림, 혹은 원림건축이라고 부른다.
2) 우성백, 2017, 전문 분야로서 조경의 명칭과 정체성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3) 야나부 아키라, 김옥희 역, 2001, 번역어의 성립-서구어가 일본 근대를 만나 새로운 언어가 되기까지, 마음산책
4) 우에하라 케이지, 1978, 조원대사전, 가시마서점
_ 김영민 교수  ·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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