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주민공동체, ‘정원’으로 연결되다

‘정원’을 매개로 모인 주민공동체 이야기
라펜트l전지은 기자l기사입력2022-05-13

아파트 단지 내 석가산 정원에 식물을 심고 있는 주민들

우리는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우리 동네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 모른다. 특히 여러 가구가 밀집한 아파트라면 분명 오고 가며 수없이 마주쳤을 텐데도 전혀 기억에 없는 사람이다. 가벼운 눈인사도 없이 스쳐 지나가기 바쁘다. 왜 그럴까? 어쩌면 동네 사람과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없어서는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정원’은 아주 훌륭한 매개가 될 수 있다.

5월의 볕 좋은 주말, 1676세대가 살아가는 대단지 아파트의 주민 80여 명이 단지 내 공터에 모였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장화를 신고, 장갑을 끼고, 앞치마를 두른 차림이었다. 선착순으로 모집된 이 주민들이 모인 이유는 단지 안에 ‘내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빈 공터였던 곳이 순식간에 50여 그루의 아로니아로 채워졌고, 알록달록 예쁘게도 꾸며진 이름표가 걸렸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는 한 가족의 나무이기도 했고, 이웃과 함께 심은 나무이기도 했다. 직접 심은 나무인 만큼 앞으로 이 나무들은 나무의 주인이 직접 물 주고, 순 따고, 열매를 따고, 풀도 뽑고, 거름도 주면서 정성껏 돌보게 된다. 한두 달에 한 번씩 모여 다 같이 가꾸는 일정도 계획 중이라고 한다.

아로니아 숲이 완성되자 주민들은 단지 입구의 석가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수국, 수선화 등 10개 종의 식물이 심겼다. 주민들은 익숙하게 잡초를 뽑고, 호미질을 했다. 뽑은 잡초를 담아둔 자루를 70대 할머니와 30대 청년이 함께 옮기고, 아저씨와 초등학생이 함께 물을 주었다. 주민들의 면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동 하이파크시티 4단지에는 ‘정원’을 매개로 모인 주민공동체가 있다. ‘아파트정원만들기주민협의체(대표 오정숙)’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진행된 올해의 첫 정원 활동이 ‘내 나무 심기’와 ‘석가산 정원에 알록달록 꽃 심기’였다.

이번 활동은 아파트 녹지대에 꽃을 심고, 아로니아 숲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숲과 정원을 가꾸고 돌보는 활동을 통해 이웃과의 소통을 활발히 하고 심신의 건강 증진을 도모하기 위해 마련됐다.

아파트 커뮤니티 온라인 카페를 통해 옆 단지에서 아로니아 50여 주를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글을 보고 ‘내 나무 심기’ 활동이 계획됐다. 직접 캐와서 심는 것까지 모두 주민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다. 잘 가꾼 아로니아 나무에 열매가 열리면 주민들이 함께 모여 청을 만드는 주민축제를 열어 모르는 이웃에게 나눠주며 일도 계획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정원에서 가을주민축제를 열었다. 단지내 숲 생태탐험, 토양산도 실험, 허브 오일과 허브식초 만들기, 내 손 안의 작은 정원 만들기, 주방 속 작은 텃밭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과 주민들이 만드는 연주, 국악, 댄스, 에어로빅 등 다채로운 공연도 있었다. 이웃끼리 연대감을 형성하고 공동체 의식을 고취하여 건강한 마을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활동이다.

오정숙 주민협의체 대표는 “1676세대가 살아가는 대단지 아파트는 구성원들의 손길과 정성이 더해진다면 더욱 아름다운 공간으로 거듭날 녹지대가 풍부한 곳이다. 아파트 녹지대, 숲과 정원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을 매개하며 건강한 공동체 문화 활동의 공간으로 활용되기에 충분하다. 다양한 여러 수종들로 가꾸어진 아파트 숲과 정원은 어린이들의 훌륭한 생태 학습 공간으로도 기능한다”고 설명하며 “저희의 활동이 아파트 정원 예쁘게 가꾸기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정원 활동을 통해 건강한 공동체를 복원하고 활성화해 공동주택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갈등을 배려와 이해로 극복해 나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로니아를 식재하는 주민들

나무에 단 이름표를 꾸미는 아이들


아파트 정문에 위치한 석가산정원에 식재를 하고 있는 주민들. 어른과 아이가 어우러져 함께 식물을 심고 있다.

사실 아파트정원만들기주민협의체가 결성된 것은 불과 1년밖에 되지 않았다. 결성된 계기도 독특하다. 아파트 커뮤니티 카페에서 활동하던 박상희·심선자·오정숙·조수진 씨가 마을공동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고양시농업기술센터의 신설 공모사업인 ‘도시민 참여형 아파트 조경 다층식재 기술 시범사업’을 발견하면서 시작됐다. 평소 식물을 좋아했으니 아파트 단지에 꽃을 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서류를 꾸려 사업에 지원했고 당선된 것이다. 해당 사업은 국비(농촌진흥청)과 지방비(고양시)가 5:5로 매칭된 사업이다.

“막상 해보니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결과물도 지금의 계획서와는 다르다. 식물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고, 정원을 꾸려본 적도 없었으니 오히려 용감하게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주민들은 회상했다.

사업 내용에는 주민들이 스스로 정원을 가꿀 수 있도록 조경전문가의 교육프로그램이 필수사항이었고, 주민의 소개로 정정수 ANC문화컨텐츠기획원 원장을 만났다. 이론교육을 12번 받고 본격적인 식재에 돌입해야 하는 일정이었다. 특히 식재는 월수금, 월수금 6일 동안 오전 4시간, 오후 4시간 하루의 8시간을 매번 스무 명 이상이 모여서 심어야 한다는데 그만큼의 주민이 모일 수 있을까가 걱정이었다고 한다.

4명의 주민은 주민 커뮤니티 온라인 카페에 글을 올리고, 엘리베이터에 전단지를 붙이고, 현수막을 걸고, 전단지를 들고 다니면서 나눠주기도 했다. 혹시 정원에 관심이 있으면 함께 하자고. 그 결과 첫 모임에 160명이 모였고, 총 340명의 주민이 정원 가꾸기에 참여했다.

제대로 관리가 안 되던 정문의 석가산 정원이 화사해졌고, 주민들이 나와서 많이 쉬는 후문과 가까운 분수대 역시 확 달라졌다. 기존에 잔디로 깔려있다가 반그늘이라 다 죽어버려 흙바닥으로만 남은 공간에 나비바늘꽃, 땅찔레, 달맞이꽃, 은쑥 등이 심겼다. 잡초로 분류되는 식물도 정원에서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주민들은 몰랐던 식물의 이름과 특성은 물론, 가지치기, 관리방법, 조경의 역사와 생태, 건강까지 다양하게 배웠고, 우리가 사는 공간에서의 조경, 정원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가꿔나가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고 한다.

“식물을 심고 가꾸는 것은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만연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애초에 어떤 식물을 어떻게 심어야 하는지 식물의 생태에 대해 알아야 유지관리 비용도 절약할 수 있는 것이다. 아파트 조경관리 차원에서 부른 업체가 적절한 방법으로 방제를 하는 것인지, 보다 친환경적인 방법은 없는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찾게 됐다. 아는 만큼 더 많은 주민들이 아파트 조경문제에 깊이 있게 고민하게 되고, 합의를 통해 조경유지관리에 조금 더 많은 비용을 사용하게 되고, 좋은 업체를 선정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동체 형성이 정말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정원을 조성하면서 얻은 가장 큰 선물은 ‘공동체’와 관계형성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공동주택은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그런데 정원을 조성하면서 주민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화기애애하게 뭉치게 되더라. 식물이 사람을 유하게 만드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정원을 만들면서 서로를 알게 되고 사람에게서 따뜻함을 느꼈다. 예전 같으면 인사도 안 하고 지나갔을 사이였는데 이제는 산책하다가 인사를 한다”

“정원을 예쁘게 만들었을 뿐인데 공동체를 이루었고, 공간이 좋아지니 사람들이 점점 밖에 나와 앉아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루어지더라. 정원이 예쁜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함께 활동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정정수 원장님도 같은 마음이셨는지 ‘한 달에 한 두 번 모여서 잡초를 뽑아라. 그러나 잡초를 뽑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간식을 나눠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다. 깊이 동감한다”

“아이들도 많이 참여했다.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흙을 만지고 식물을 심어보는 경험을 하기 어렵지 않은가. 아이들 교육 차원에서도 정원은 훌륭하지만, 스스로에게도 큰 교육이 됐다. 범의귀를 식재할 때 배웠던 내용이다. 식물끼리 싸워 이기는 식물이 살아남는 게 자연의 이치이고, 그래야 사람의 손이 제일 많이 안 간다고 하더라. 소나무 주변에 심기에 좋고, 잘 번지지도 않는 식물이었다. 범의귀를 통해 자연에 순응하는 태도를 깨달았고, 아이에게 간섭하는 엄마였는데, 많이 놔두는 엄마로 바뀌었다. 그것을 배운 것이 참 감사했다”

“‘꽃을 심으면 예쁘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해 이제는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 함께 식재를 하면서 공동체 복원의 가능성을 온몸으로 느꼈기 때문에 한 번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부정기적으로 느슨한 만남을 유지하면서 공동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과정에서 교류가 이어지고 발전한다면 정원뿐만이 아니라 아파트의 다양한 현안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파트정원만들기주민협의체는 공동주택의 대안적 공동체 문화를 일구기 위한 성공적인 첫걸음을 일회성 사업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공동체 문화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올해 고양시자치공동체지원센터에서 시행하는 ‘아파트 공동체 지원 사업’에 지원해 선정됐다. 이들이 계획한 ‘내 손으로 만드는 건강한 우리마을: 몸케어&마음케어, 마을케어’ 프로그램은 주민축제와 마을꿈공청회, 마을꿈파티까지 다양하게 기획되어 있다. 물론 그 중심에는 함께 정원을 만들고 가꾸는 일이 있다.


아로니아 50여 그루


단지 내 공터를 아로니아숲으로 만들고 있다.


식물에 물을 주고 있는 아이들





사진제공=아파트정원만들기주민협의체(주민 신익수, 오정숙 씨)
_ 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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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8709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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