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영국 공원녹지의 위기와 흥미로운 대응 (2)

남진보 논설위원(목포대 조경학과 교수)
라펜트l남진보 교수l기사입력2022-05-12
영국 공원녹지의 위기와 흥미로운 대응 (2)
영국 공원녹지정책 1972년 이전




_남진보 목포대 조경학과 교수



영국 공원녹지정책의 시작점은 아마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일 것이다. 그후 1972년, 이 시기를 전후로 영국 공원녹지의 정책적 패러다임이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 공원녹지정책 이야기를 하려면 어김없이 빅토리아 여왕부터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빅토리아 여왕과 공원녹지의 이야기 전에 누군가의 러브스토리를 잠깐 짚어 봐도 좋을 듯 하다. 남의 사랑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지 않나 싶다. 1981년 찰스 왕세자와 결혼한 뒤 윌리엄과 해리 두 아들을 낳았고, 1996년 이혼, 그리고 1997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영국 다이애나 전 왕세자빈의 이야기다. 스캔들처럼 영국 왕실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다이애나 전 왕세자빈 이야기를 회상하시는 분은 저 또래 또는 저의 형님, 누님들이시겠다.

빅토리아 여왕은 상당히 적극적인 여인이자 할아버지 조지 3세의 광기를 물려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비범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말하면 상당히 쿨한 여인이다. 빅토리아의 17번째 생일에 알버트 왕자를 만나 삼촌 레오폴트 1세에게 연애편지를 보내고, ‘가장 즐거운 외모를 가진 왕자’로 표현한다. 앨버트가 1839년 가을 빅토리아 거주지 윈저에 방문하고 5일 후 앨버트에게 청혼을 한다. 놀라울 수도 있으나 이때의 관습이라고 한다. 


Windsor Castle in Modern Times, painting of Albert and Victoria, Princess Royal, 1840-43 by Edwin Landseer. / 자료: Royal Collection Trust

꽤나 적극적인 여인이지만 딸 베아트리스의 빅토리아 침실 이야기의 파격적인 공개는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18금 이야기이므로 상상에 맡긴다. 1861년 앨버트가 장티푸스로 갑작스런 사망에 이르자 빅토리아 여왕은 이후 40년 동안 검은 옷만을 입었을 정도로 앨버트를 애도하였다. 소녀이자 여인이었나 보다. 그럼에도 빅토리아 여왕은 대영제국이라 불리는 시대를 이끌었던 리더이다. 특히, 영국 공원녹지 측면에서는 버큰헤드 공원의 시대이며, 그 이전 1833년 Select Committee on Public Walks에서의 공공장소 그리고 공공공원을 언급한 흥분된 시간의 시작이기도 하다. 


1833년 Select Committee on Public Walks(왼쪽), 1847년 Towns Improvement Clauses Act(오른쪽 위), 그리고 오픈스페이스법(Open Space Act) 1887(오른쪽 아래)

리버풀(Liverpool) 지방정부에 근무하였던 아이작 홈즈(Isaac Holmes)는 최초로 공공공원을 조성할 것을 제안했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1847년 버큰헤드 공원이다. 사실 버큰헤드 공원 개장 이전에도 공원은 있었다. 정책적으로 1835년 Municipal Reform(Corporations) Act에서 특권 상류층에게 공원 조성을 위한 부과금을 요구하기도 하였으며, 1847년 Towns Improvement Clauses Act에서는 공원 조성에 따른 부동산 가치 상승을 언급하기도 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빠르다. 배울 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1848년 ‘공공보건법(Public Health Act)’을 통한 공원녹지와 건강과의 긍정적 상호작용을 언급하면서 공원조성에 힘을 불어넣어주기도 한다. 1851년 Kensington Improvement Act에서 지방세를 통한 지방정부의 공원녹지 조성 부지 마련, National Playing Fields Association과 같은 비영리 단체에서 1859년 유원지법(Recreation Grounds Act)을 배경으로 하는 공원녹지 조성, 그리고 우리가 너무나 많이 언급한 오픈 스페이스로서의 공원은 영국 오픈스페이스법(1881, 1883)에서 언급된다. 더욱 흥분되는 것은 커뮤니티, 거버넌스의 영국, Municipal Corporation Act 1883의 제도 아래에서 실제 공익신탁법(Charitable Trusts Acts)을 통한 기금조성, 오픈스페이스법(1887), 1888년의 지방자치법(The Local Government Act) 기반 정책에서는 지방정부의 공원 조성 및 관리를 위한 권한을 강화하여 지방정부 주도를 완성하였다.

이후 영국 공원녹지 정책은 큰 쟁점은 없어 보인다. 세계 제1차 대전, 2차 대전을 겪으면서도 지방정부의 공원녹지 부지 매입과 커뮤니티의 활성화(다양한 주장들이 있으나 본인은 '승리를 위해 땅을 파자(Dig for Victory)' 캠페인에서 영국 커뮤니티의 활성화 시작이라는 주장에 대해 동의하는 바이다.)에 이르기까지 2022년 시점에서는 영국의 상당히 긍정적인 면만 보고 있을지 모른다.

세계 제2차대전 당시 영극의 Dig for Victory 캠페인 / 자료: www.1900s.org.uk

영국의 사회, 경제, 문화 전반에 걸쳐 그들의 정책을 들여다보는 이유가 있다. 실제 영국의 정책을 벤치마킹한 사례가 상당하며, 대표적으로 상기 언급하였던 지방자치법, 그리고 그린벨트 관련 법 등이 있다. 물론 영국과 우리의 정책은 시작 시기는 물론이고 내용에도 차이는 있다. 국내에서는 공원 조성을 위한 부지 마련에 대해 고민하고 있지만, 영국에서는 이미 지방정부가 부지를 마련해 놓았기 때문이다. 걱정의 시작부터가 다른 것이다.

우리가 여러모로 영국의 정책을 벤치마킹하고 있지만 영국의 정책이 항상 공원녹지를 위해 착하지만은 않았다. 위에서 언급되었던 강력한 지방자치제도를 이끌었던 The Local Government Act, Localism Act(주도 정부에 따라 명칭이 다름)와 같은 정책은 영국 공원녹지에 비수를 꽂는다. 시대가 그렇게 만들었다 해도, 공원녹지 관계자를 비롯해 영국 공원녹지 정책을 드려다 본 본인은 너무나 잔혹하다고 생각한다. 반전이다.

마가렛 데처의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그리고 지방정부법(The Local Government Act 1972)에 의한 영국 공원녹지의 후퇴에서 관리로의 패러다임 전환 이야기, 즉 영국 공원녹지의 위기와 흥미로운 대응의 시작 이야기는 다음호에 담기로 한다.
_ 남진보 교수  ·  목포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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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nam@m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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