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동지들에게 고함

김영민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라펜트l김영민 교수l기사입력2021-12-08
동지들에게 고함


_김영민(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



동지들에게 고합니다. 
조경을 업으로 하는 우리는 다음 세 가지를 성취해야 합니다.
첫째, 유명해져야 합니다.
둘째, 돈을 많이 벌어야 합니다.
셋째, 기득권층이 되어야 합니다.

첫째, 당신들은 유명해져야 합니다. 자신을 드러내고 알려야 합니다. 예로부터 조경을 하는 이들은 자연을 본받아 겸양을 미덕으로 여겨 스스로 낮추고 뒤편에서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이제, 겸손 따위는 개에게나 줘버리십시오.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물면서 만물을 이롭게 하는 물을 애써 본받으려 하지 마십시오. 만물을 이롭게 했다면 낮은 곳에 머물지 말고 그만큼 대접을 받고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진정 당신이 빛나는 조경을 하고 있는데 아무도 알지 못한다면, 감히 말합니다. 그 이유는 당신의 방만함과 오만함 때문입니다. 내가 나의 훌륭함을 보여줄 노력조차 하지 않는데, 어째서 저절로 세상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란단 말입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옛 성현들도 세상에 나가 목소리를 높여 들어주지 않는 이들에게 자신의 가르침을 외쳤습니다. 위대한 사상가들도 자신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세상을 주유하였습니다. 세기의 천재들도 자신의 발견과 업적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할진대 세상이 저절로 나의 조경을 알아주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허나,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조경으로 유명해져야 합니다. 전시를 하십시오. 글을 쓰십시오. SNS에 사진을 올리십시오. 미디어 콘텐츠를 띄우십시오. 그러나 조경가의 명성은 글과 이미지와 언변과 사진과 유머 감각이 아니라 조경을 통해서 얻어야 합니다. 그것이 작품이라고 불리든, 공간이라고 여겨지든, 개념으로 제시되든 조경의 결과이어야 합니다. 좋은 조경을 만들지 못하는 조경가는 보이지 않아야 하고 좋은 조경을 만드는 조경가는 보여야 합니다. 이제 보이지 않는 정원(Invisible Gardens)에서 벗어나 모두가 보고 싶어 하고 감탄할 수 있는 조경을 해야 합니다*. 당신이 좋은 조경을 한다는 신념이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세상에 당신의 조경을 알리십시오. 그리하여 그 명성을 통해 더 좋은 조경을 하십시오. 당신의 더 큰 꿈을 이루십시오.

*‘보이지 않는 정원(Invisible Gardens)’은 Peter Walker와 Melanie Simo가 1994년 저술한 책의 제목이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미국의 현대 조경의 성과가 불구하고 알려지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에 근거하여 조경가와 조경 작품을 재조명하고자 했다. Peter Walker는 평생 ‘보이는 조경’을 추구해온 조경가이다. 그의 보이는 조경은 정원, 공원, 기반시설, 도시, 그리고 글과 모든 문화적, 예술적 기획을 모두 포함한다.

둘째, 당신들은 돈을 많이 벌어야 합니다. 우리는 늘 공공에 대한 사명감을 갖고 일을 해왔었습니다. 좋은 조경을 만들어내기 위해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시간을 쏟아왔습니다. 당연히 좋은 조경가라면 그래야 합니다. 하지만, 정당한 대가를 받고 그래야 합니다. 오히려 기준보다 과도한 대가를 받아야 합니다. 당신 뛰어난 조경가라면 더더욱 그래야 합니다. 뛰어난 조경가인 당신이 공공성, 혹은 작품성을 추구하려고 제대로 된 대가도 받지 못하고 일을 한다면, 당신은 무능할 뿐 아니라 조경계에 큰 해악을 끼친 나쁜 조경가입니다. 뛰어난 당신이 헐값으로 일을 해준다면, 당신으로 인해 누군가는 더 낮은 대가를 받아야 합니다. 뛰어난 당신이 헐값으로 해준 뛰어난 일 때문에, 사회는 그 헐값을 조경의 당연한 가치로 여기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자본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당신의 의사에 상관없이 자본주의에서 모든 가치는 돈으로 평가됩니다. 좋은 상품은 비싸며, 좋지 않은 상품은 쌉니다. 좋은 예술에는 높은 가격이 매겨지며, 나쁜 예술에는 헐값이 매겨집니다. 사회가 인정하고 필요로 하는 분야의 임금은 높으며, 그렇지 않은 분야의 임금은 낮습니다. 물론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가치들도  분명 있습니다. 사회가 매긴 우리의 값어치가 형편없지만, 우리는 실제적 가치는 중요하다고 주장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공허한 독백이며 무의미한 자위행위입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학생들에게 돈은 못 벌지만 가치 있고 재미있는 일이라는 헛소리로 조경을 하라고 설득할 생각입니까? 이따위 헛소리를 집어치우려면 일단 돈부터 제대로 버십시오. 괜히 허깨비 같은 윤리의식과 명분에 휘둘리지 말고, 안된다고 하십시오. 좋은 조경가를 쓰기를 원한다면 제대로 돈을 내라고 하십시오.

허나,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 제대로 쓰십시오. 벤틀리는 꼭 뽑으십시오. 그래야 사람들이 조경이 그 정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마지막에 뽑으십시오. 먼저 젊은 친구들의 월급부터 제대로 주십시오. 이제 우리도 야근을 되도록 하지 말자는 공허한 파이팅을 남발하지 말고, 야근수당이나 제대로 주십시오. 그러면 당신도 더 효율적인 사무실의 운영을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영업에 쓸 돈과 시간을 젊은 친구들의 복지에 쓰십시오. 그러면 영업을 하지 않아도 그 젊은 친구들의 열정과 재능이 또 다른 일을 만들 것입니다. 대가 없는 조경에 대한 순수한 당신의 열정을 젊은 친구들에게 강요하지 마십시오. 당신부터 일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지불하는 이가 되어야, 당신도 당당하게 대가를 요구하는 조경가가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돈을 많이 벌어야, 그러나 제대로 벌어야 조경의 가치가 제대로 정립됩니다. 
     
셋째, 당신들은 기득권층이 되어야 합니다. 잘못된 관행을, 불공정함을 뒤에서 구시렁거릴 시간에, 내가 무엇을 해야 문제를 고칠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노력하십시오. 당신은 조경을 해오며 불공정한 일들을 수없이 겪었고 좌절도 했을 것입니다. 모든 문제가 누군가 나쁘기 때문이라고 단정하고 욕이나 시원하게 한다면 굳이 고민할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고치겠다고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우선 왜 그런 불합리한 관행이 존재하는가부터 제대로 파악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제도와 절차의 문제가 보일 것입니다. 관계자들의 서로 다른 입장과 역할이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문제가 절대적인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관계와 권력의 문제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조경의 일이 건축과 토목에게 주어지며 조경가에게는 참가의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 불합리한 일들을 겪어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원설계에 조경가가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 조경가에게는 부조리이지만, 건축가와 엔지니어들에게는 부조리한 일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엔지니어링사들이 독식한 대형 프로젝트의 설계가 결국 하도에 하도를 거쳐 헐값에 조경설계사들에게 넘어오는 경우를 수없이 보아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행정가의 입장에서는 작은 조경설계사보다 수많은 실적을 갖춘 수백 명 규모의 엔지니어링사가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것이 훨씬 공정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제도는 최선을 찾기 위해 고안된 시스템이 아니라 최악을 막기 위한 시스템입니다. 

당신은 깨달아야 합니다. 당신이 지적한 많은 문제는 맹목적 분노가 해결해 줄 수 없으며, 제도적 틀 안에서 합의를 통해 개선해야 한다는 것을. 이것이 당신이 기득권층이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당신이 기득권(旣得權)을 부정한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지금까지 기득권을 가지려 제대로 노력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득권은 개인이나 집단이 정당한 절차를 밟아 이미 차지한 권리를 의미합니다. 즉, 절차적 정당성을 거쳐 사회적으로 합의된 권리입니다. 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제도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학회나 협회에 들어가서 일원이 되어야 합니다. 지자체나 기관의 심의에 참여하여야 합니다. 자격이 된다면 각종 공모의 심사위원으로 들어가야 하고, 자문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당신이 되어야 하는 기득권층의 의미입니다. 고고한 척 조경가로서의 주어진 과제에만 집중하는 척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그냥 사회적 책임을 지기가, 제도 안에서 들어가 문제를 해결하기가 귀찮은 것일 뿐입니다.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우선 기득권, 즉 정당하게 제도를 바꾸고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해야 합니다.

허나,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당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득권층이 되지는 마십시오. 타인의 이익을 함께 고민하고 나의 이익이 공공선이라는 공동체의 이익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돌아보십시오. 기득권을 획득하기로 작정한 이상 당신의 인생은 매우 피곤해질 것입니다. 누군가는 당신을 욕할 것이며 손가락질할 것입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고고한 도덕군자로 남기를 원한다면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고, 예전처럼 술자리에서 다른 이들과 세상을 욕이나 하고 있으면 됩니다. 조경가가 사회적으로 정당하게 주어진 권리를 얻어 제도를 바꿀 수 없다면, 그런 쓸모없고 무가치한 전문가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제는 당신은 행정과 정치와 문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득권층이 되어야 합니다. 분명, 당신은 결국 실패할 것입니다. 당신은 이제 새로운 문제의 원인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원래 시대는 그렇게 발전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다음 세대의 조경가들이 당신이 놓치거나 고치지 못한 문제를 바로 잡을 수 있도록 발판이 되십시오. 새로운 타도의 대상이 되십시오.
_ 김영민 교수  ·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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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kim@uos.ac.kr

네티즌 공감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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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의 하도라는 말을 가지고 말장난 하시는 밑에 분은 반성하길 바라며 처참한 조경계에서 없어져야 할 분 같군요.

이 글은 현재 조경계를 잘 표현하신 것 같습니다. 조경업에서 현실감 있게 말씀해달라고 하셔서 말씀드리면 조경업계 새로 입사하는 친구들에게 포괄임금, 근무시간초과, 휴일, 퇴직금 등 제대로 지켜지는 곳이 몇곳입니까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곳이 있다면 게시판에 올려서 조경꿈나무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또한 서로간의 단가 줄이기를 통해 밥그릇을 뻇다 못해 서로의 밥그릇을 부수고 있는것 아닌가요? 그 피해를 누가 받게 될까요? 열정열정열정만 외치는 소장님들이 아닌 젊은 친구들이 받을 것 입니다.

조경과 토목 건축의 분할적인 사고로 업이 정의되고 판단되지는 않지만 조경이 토목과 건축의 밑으로 들어가고 있는게 현실인것 같습니다.

김영민 교수님의 뜻에 공감하며 많은 학생들이 갈 수 있는 좋은 회사가 많아지길 바랍니다.


2021-12-25
하도급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물론 '하도급'이란 용어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표현하지 않고 '하도'로 표현했는지 의아하네요.

현장성을 살리기 위한 의도였던 것 같은데, 현장종사자도 아닌 대학교수의 글에서 그런 현장 은어가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건설 관련 직장인이 아닌 학생이나 일반인에게는 해독이 쉽지않은 표현입니다.
2021-12-12
'하도급'을 검색해보시면 될것 같습니다~^^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에게 제조위탁, 수리위탁, 건설위탁, 용역위탁을을 하
거나, 원사업자가 다른 사업자로부터 제조위탁, 수리위탁, 건설위탁, 용역위탁
을 받은 것을 수급사업자에게 다시 위탁을 하고, 이를 위탁 받은 수급사업자가
위탁 받은 것을 제조 또는 수리하여 이를 원사업자에게 납품, 인도, 제공하고
그 대가(하도급대금)를 수령하는 행위를 말한다” (하도급법 제2조 제1항 참조)
2021-12-12
기사에서 '하도에 하도를 거친다'는 표현의 '하도'는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데, 무슨 뜻인지요?
2021-12-09
공감합니다. 하지만 ^동지^ 라는 말로 당신의 생각을 느끼기엔 아직 거리감이 있게 보이는게 사실이네요. ^팩폭^의 감성으로 접근 하는 방법일순 있겠으나. 실상 사례나 현실전개로 알수있는 내용이 없어 보입니다. 좀 더 조경업의 현실감있게 생각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유명해지지 않아도, 돈을 많이 벌진 못해도, 기득권이 되진 못해도! 더더욱이 타도의 대상이 되지 않아도! ^조경^을 한다는것은.. 훌륭한 ^조경가^ 가 될 수 있다는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제도나 틀안에서만 업을 생각하는것. 진부하다고 생각합니다.제도나 틀은 최악을 막기 위한 시스템이 아닌, 최소한의 기준이라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틀이나 제도, 기득권으로... 그리고 조경과 토목 건축의 분할적인 사고로 업이 정의되고 판단되는 시대는 아니라고 생각해봅니다. 감사합니다
2021-12-09
김영민 교수님의 이 글이 '조경계'에서 크게 울려지길 기대해 봅니다.
2021-12-08
하. 팩트폭행이네
2021-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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