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된 현실 속 유일한 탈출구는 ‘정원을 상상하는 것’ 아니었을까?”

[인터뷰] 덕수궁 프로젝트2021: 상상의 정원展 ‘몽유원림’, 조경학자 성종상(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라펜트l전서연 녹색기자l기사입력2021-10-06
‘덕수궁 프로젝트 2021: 상상의 정원’展이 9월 10일부터 11월 28일까지 덕수궁 정원 및 전각에서 열린다. 2019년 전시회 개최 이후 2년만에 ‘상상의 정원’이라는 새로운 주제로 관람객들을 다시 찾은 것이다.

네 번째를 맞이하는 ‘덕수궁 프로젝트’의 이번 주제는 ‘정원’이다. 정원을 매개로 덕수궁이 품은 역사를 돌아보고 오늘날 정원의 가치에 대한 생각할 수 있는 작품들이 준비됐다.

그 중 이용배(애니메이터)X성종상(조경학자)의 ‘몽유원림(夢遊園林)’은 조선 이후 대한제국과 일제라는 격동의 시대를 거치면서 고종이 겪었던 번민과 고뇌, 그리고 좌절 속에서 어쩌면 그가 꿈꾸었을 만한 상상의 세계를 정원을 매개로 해서 펼쳐낸 작품이다.

성종상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작품의 숨겨진 뜻, 작업 과정, 그리고 조경가로서 그의 바람에 대해 들어봤다.

‘덕수궁 프로젝트 2021: 상상의 정원’展, ‘몽유원림(夢遊園林)’ 성종상 작가(조경학자)


‘상상의 정원’이라는 주제로 전시가 진행됐는데, 주제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힘들고 아픈 이들이 많습니다. 관계가 손상되거나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서 정신 건강은 물론 사회적 건강이 많이 훼손되어 있다고들 합니다. 조경가로서 저는 그런 상황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데 정원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마침 덕수궁 전시를 기획하려던 국립현대미술관의 큐레이터가 저의 강의를 듣고서 상의를 해왔고, 자연스럽게 ‘상상의 정원’이라는 주제로 이끌어 낼 수 있게 되었지요. 조선 사대부들은 시문이나 그림, 음악 등을 나누는 아회(雅會, 우아한 모임) 혹은 시회(詩會) 등을 자주 가졌었는데, 대체로 정원이 그 주요 현장이었습니다. 정원이 예술을 생산하고 나누며 즐기는, 문화예술발전소이고 무대였던 셈이지요.

사실 동서양 역사로 보면 정원은 예술의 훌륭한 동반자였던 적이 많습니다. 하지만 덕수궁에는 (한국)정원에 관한한 특별히 보여줄 게 없고, 고종 역시 정원과 관련해 구체적인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이 문제였습니다. ‘상상’을 동원할 수 밖에 없었던 셈이었지요.


‘몽유원림’ 작품설명 부탁드립니다.

함녕전 뒤쪽 언덕에 위치한 정관헌은 ‘만물을 고요히 바라봄(靜觀)’이라는 명칭이 암시하듯 고종이 차와 함께 휴식을 취했던 장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정관헌과 그 일대가 고종에게는 일종의 후원(後苑)과도 같은 장소였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규모나 경관, 그리고 정원으로 보자면 당시 덕수궁은 창덕궁은 물론 경복궁 보다도 훨씬 좋지 않은 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종이 덕수궁에서 머물었던 까닭은 그곳이 영국, 러시아 등 외국 공관들과 가까워 일본이나 청나라의 간섭과 영향을 덜 받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당시 열강의 충돌과 각축 속에서 고종은 ‘구본신참(舊本新參), ‘동도서기(東道西器)’를 바탕으로 한 근대적 황제국을 꿈꾸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같은 노력이 모두 무위로 돌아가고, 고종은 1907년 강제로 퇴위 당한 후 덕수궁으로 이름이 바뀐 이 궁궐에서 일제의 감시와 견제로 유폐되다시피한 삶을 살다가, 침전 함녕전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몽유원림’은 함녕전에서 외롭고 힘든 삶을 살았던 고종의 ‘정관(靜觀)’과 ‘와유(臥遊)’를 구현하고자 한 것입니다. 열강의 각축과 침탈이 극에 달한 격동의 소용돌이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던 고종이 잠시라도 꿈꾸었음직한 지경이 정원이었을 것이라고 상정해 본 것입니다. 그가 직접 만들지도 가보지도 못했던 이상향을 아름다운 우리 국토, 금수강산과 정원이 아니었을까라고 상상해 본 것이지요.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종병이라는 사람이 늙고 병들면 명산을 두루 보지 못하게 되자 유람했던 곳을 그림으로 그려 방에 두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 ‘와유(臥遊)’인데 누워서 즐긴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함녕전에서 고립된 삶을 살았던 고종의 와유를 상상으로 구성해 본 것이지요.



작업과정의 스케치 / 유가현 제공


작업과정 중 고종의 삶에 대해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작품을 작업하며 특히 고종의 인간적 면모에 대해 많이 생각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고종은 대체로 무능하거나 우유부단한 인물로 평가되는 듯 합니다. 이번에 저는 왕으로서의 평가는 잠시 접어 두고 한 인간으로서의 고종을 조명해보고 그의 마음을 헤아려보고자 했습니다.

한 개인으로 보자면 고종의 삶은 매우 고통스럽고 힘들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몽유원림’의 전반부에다 신미양요부터 시작해 일련의 사건들을 쭉 나열했습니다만, 한 인간이 겪기에 그것들은 너무나 거대한 격변이고 엄청난 사건들이었지요. 그런 와중에 노년에 본 자녀들(영친왕, 덕혜옹주 등)은 그에게 큰 위안거리였던 걸로 보입니다. 어린 아이들을 자신의 거처 함녕전으로 데려와 함께 놀곤 했지요. 영상 속에 짧게 삽입된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그런 격변과 사건 속에서 고종이 잠시나마 느꼈을 기쁨과 위안을 암시하고자 한 것입니다.


작품 자체가 ‘고종의 의원(상상의 정원)’이기에 작업과정에서 교수님께서도 작품에 상상의 영역을 많이 사용하셨을 것 같습니다.

당시 고종은 왕비 민씨를 일제에 의해 살해 당하고 이완용, 이지용, 박제순 등 친일 신하들에 둘러싸여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몽유원림’은 그런 고립무원의 상태였던 고종이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통로가 ‘꿈 속에서 정원을 즐기는 것’이 아니었을까? 라는 상상에서 시작한 작품입니다.

고종의 삶을 정원과 관련해 들여다보자면 경복궁 건천궁에서의 시절이 주목됩니다. 건청궁은 왕이 된 후에도 10여년 이상 양어머니 신정왕후와 대원군에 가려져 있던 고종이 청년 군주의 등장과 의지를 대내외로 과시한 곳입니다. 주변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비를 들여서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경복궁 안, 그것도 북측 끝 부분에 다시 또 담장을 치고 건천궁을 지었습니다. 궁 안의 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 안에 사바틴 등 서구인들을 지내게 한 건물까지 만들었지요. 왜 그랬을까요? 일제 등의 위협으로 인한 극도의 불안감이 깔려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지요. 저는 그렇게 자신의 뜻대로 조성한 건청궁에서의 12년 여 동안의 삶이 고종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추정해 봤습니다.

건청궁 바로 앞에 향원정과 취향교를 지어 즐기거나 녹산을 거닐며 사색의 시간을 갖기도 했겠지요. 때로는 아버지 대원군이 복원한 경회루도 즐길만 했을 걸로 생각됩니다. 그 같은 정원생활의 많은 시간에는 왕비 민씨도 함께 했겠지요. ‘몽유원림’의 본격적인 도입부를 향원정으로 시작한 것은 그런 까닭입니다. 이후 우리 국토의 아름다운 면모, 곧 금수강산의 모습을 등장시킨 것은 왕으로서 그가 품었을 내 나라, 내 땅에 대한 애착심과 그리움을 드러내 보려한 것이지요.

취향교가 북측에 놓여져 있는 1954년 경의 향원정 사진. 고종은 건청궁을 짓고 그 앞에다 향원정을 조성해 즐겼다. 인접한 녹산이나 경회루 등도 고종과 민비의 정원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 문화재청 제공

경복궁의 공식 연회장인 경회루는 엄정한 형식미를 갖추면서 북악, 인왕, 남산 등 주변 산을 함께 담아냄으로써 인공과 자연미가 절묘하게 어울린, 대표적인 한국정원이라 할 수가 있다. 대원군이 복원한 경회루 역시 건청궁 시절 고종의 정원생활에 중요한 무대가 되었을 것이다. / 성종상 제공(2021년 7월)


작품을 표현하기 위한 다양한 매체 중 애니메이션을 사용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애니메이션은 꿈과 상상을 표현하기에 매우 적합한 매체입니다. 꿈길처럼 표현하기도 쉽고, 시공을 초월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애니메이션은 이미지와 택스트, 음악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총체적, 복합적으로 전달하기에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지요. ‘몽유원림’ 후반부에 고종이 상상의 나래를 펴고 ‘우화등선(羽化登仙)’하는 듯한 장면이 있습니다. 물리적인 시공을 초월하는 것을 표현하기에는 영상과 음악 만한 것이 없지요.

그에 더해 전시 공간을 평소 공개되지 않는 문화재인 함녕전으로 잡았기 때문에 매체 사용에 제약이 있었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평소에는 금지된 공간을 직접 들어가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했고, 그곳에서 고종과 함께 앉아서 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도 있었지요.


마지막으로 관람객들에게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조선 사대부들이 즐겼던 정원 중에 의원(意園)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상상으로 즐긴 정원이라는 것이지요. 저는 구곡(九曲)이나 의원 등은 한국의 매우 독특한 정원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작품 주제를 의원, 곧 상상의 정원으로 삼은 데에는 전시를 계기로 일반인들이나 조경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한국의 정원문화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도 담겨 있습니다.

요즘 정원 이야기를 하면 많은 분들이 아파트에 살고 땅 한 평 없는데 어떻게 정원을 가꿀 수 있겠느냐고 묻곤 하십니다. 그럴 때 저는 ‘의원’을 이야기합니다. 꿈꾸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조선 사대부들은 정원 꿈꾸기를 한 후에 글을 쓰거나(의원기) 그림(의원도)을 그렸습니다. 그 후 여건이 되면서 결국 정원 만들기로 이어졌습니다. 꿈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상상의 정원’ 전시를 찾는 분들이 당시 고종의 처지와 심정을 상상해 보면서 감상하시고, 나아가 각자 자신만의 정원을 꿈꾸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흔쾌히 동참해 주신 이용배교수님, 어려운 조건에도 최선을 다해준 영상팀과 여러 스탭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몽유원림’을 감상하는 관람객들
글·사진 _ 전서연 녹색기자  ·  서울여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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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f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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