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가 정영선이 현시대 조경가에게 주는 질문들

국립현대미술관, ‘정영선이 만든 땅을 읽다’ 학술행사 개최
라펜트l기사입력2024-07-08

 


국립현대미술관은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전시 연계 학술행사 ‘정영선이 만든 땅을 읽다’를 지난 3일 개최했다. 

 

조경가 정영선의 철학과 태도, 작품을 들여다보고 현시대 조경가에게 주는 질문들을 생각해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전시 연계 학술행사 ‘정영선이 만든 땅을 읽다’를 지난 3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했다.

 

학술행사는 ▲세션1 ‘조경가 정영선을 읽다’ ▲세션2 ‘정영선의 작업을 읽다’ ▲세션3 ‘정영선과의 대화’ 등 총 3개의 세션으로 구성됐다.

 

세션1에서는 ▲태도가 경관이 될 때 : 정영선의 조경(배정한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유산의 창조 : 조경가 정영선이 만든 한국 조경설계의 변곡점(김아연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을 발표했다.

 

태도가 경관이 될 때: 정영선의 조경

 

배정한 교수는 조경가 정영선의 이론과 실천을 재해석하는 관점을 제시하며, 정영선 조경의 변곡점이 된 세 가지 작업을 짚어봤다.

 

첫째는 ‘아시아공원과 선수촌’이다. 1981년 대능건설 설계실 이사 시절로, 이는 예술의전당(1984), 한국전력 본사(1986), 파리공원(1987)을 낳았으며, 이후 조경설계 서안 창립 후 도시공원을 넘어 테마파크, 리조트로 프로젝트의 유형을 확장하는 계기가 된다. 이 프로젝트는 조경 태동기의 혼란을 교정하고, 경로를 제시한 가이드맵의 역할을 한다. 조경 ‘설계’ 과정과 방법의 교본이 된다고 분석했다.

 

여기서 중요시한 키워드는 ‘관계와 맥락, 연결’이다. 녹지를 부지 내로 끌어들여 가로를 넓히고 담을 없앤다거나 근린공원이나 공공건물의 담을 없애고 도로나 보도와 면하게 해 안팎의 관계를 설정한다는 점, 오픈 스페이스가 산수화의 발묵처럼 도시 공간에 번치고 퍼져 스며들어 가게 하는 효과를 꾀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희원’으로, 이를 정영선 조경의 전환점이자 전성기의 개막을 알리는 시점으로 봤다. 그는 “희원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지만, 전통조경의 현대석 재현으로 해석하는 것보다는 전통, 한국적인 것으로부터의 해방으로 보는 것이 희원을 더욱 잘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전통적, 한국적이라는 말에 그의 조경을 가두기보다 주변 경관과의 관계맺기, 부지 공간감과 경관 경험의 극대화된 것들에 주목할 것을 촉구하며, 오랫동안 현대적 조경에서 사라졌던 돌봄과 가꿈에 방점을 둔 ‘정원적 접근’을 조경의 영역으로 재소환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했다. 이후 고급 클라이언트들에게 주목받으며 정원이 조경의 영역으로 조금씩 재소환됐으며, 섬세한 완성도를 요하는 작업들이 탄생하게 됐다. 아산병원(2007), 아모레퍼시픽 본사(2017),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2019), 제주 오설록 티뮤지엄(2012/23), 이니스프리(2019) 등이다.

 

세 번째는 ‘선유도공원’을 꼽았다. 선유도공원은 정영선 조경의 정점이자 한국 조경설계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중요한 계기로, 기억과 흔적을 살려 경관과 관계 맺게한 ‘발견의 디자인’이자 포스트-인터스트리얼 공원(서울숲, 서서울호수공원, 경의선숲길, 문화비축기지)의 길잡이가 됐다. 배 교수는 “정영선의 ‘지사적 맥락을 읽고 이해하는 데서 출발했다’는 말에서 땅의 시간과 이야기를 읽어내고 주변 경관가 관계 맺는 태도에 대해 엿볼 수 있다”며, 다큐멘터리 영화 ‘땅에 쓰는 시’가 단순히 낭만적인 측면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글자의 배열과 호흡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시처럼 경관을 세심하게 다뤄야 한다’는 그의 말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정영선의 작업을 정영선 고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부지의 조건과 맥락을 세심하게 독해하고 섬세하는 연결하는 ‘태도’에 있다. 관계 맺기, 맥락 읽기/잇기는 ‘연결사’로서의 조경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땅에 맞는 것, 그 땅의 특징과 맞는 것을 조경 작업의 최우선으로 여기고, 터 읽기과 맥락, 관계 맺음을 고심하는 태도는 식물와 지형을 매개로 현실의 경관으로 번역이 된다. 태도가 경관의 형식과 내용을 구성하는 것이다. 정영선의 태도는 2024년의 조경가들에게 던져진 질문지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유산의 창조 : 조경가 정영선이 만든 한국 조경설계의 변곡점

 

김아연 교수는 “조경가 정영선의 작업이 국토 근대화를 보정해 온 푸른 유산으로 남을 것인가 혹은 대한민국 조경 1세대의 예외적 사례로 기억될 것인가는 다음 세대의 실천에 달려있다”며 우리 세대가 생각해봐야 하는 쟁점들을 김아연 교수가 들은 8가지 문장으로 짚어봤다.

 

첫째는 “샛강에서 디자인한 곳이 어디예요?”로, 여의도 샛강을 새로운 것, 인공적인 것, 수직적인 것을 만드는 개발 시대의 환경 디자인 관행 속에서 원래의 것을 지키고 폭력적 개입에 저항하는 일이 디자인의 과업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로 꼽았다. 자기완결성을 포기하고 ‘연결’과 ‘관계’를 통해 총체성을 만들고 자신을 낮춰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역설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자기자신만의 미니페스토와 화려한 컴퓨터 조형에 취한 설계, 인스타그래머블 풍경 만들기와 포토스팟의 난무, 자아도취적 발언과 시각적 포장의 재생산으로 설명되는 작금의 우리는 정영선 조경을 보며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둘째 “나는 조경이라는 말이 싫다” + “조경은 땅에 쓰는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고,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는 조경가 정영선의 말이다. 김 교수는 “조경이라는 말을 사랑하지만 왜 이 단어로 주어졌을까 하는 애증이 서린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그럼에도 정영선은 조경가의 이름으로 50여 년 간 작업했고, 유재석에게 조경가로 소개됐으며, 이로 인해 더이상 조경이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이어 “조경이라는 이름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도 있고, 학과 이름에서 조경을 삭제한 학과도 있고, 조경가란 누구냐는 논쟁도 있었다. 결국 조경이라는 이름에 대한 부끄러움과 논쟁은 지난 50년 동안 조경으로 해왔던 일들에 대한 뼈 아픈 성찰과 반성 없이 뜨는 다른 이름으로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는 소모적인 논쟁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셋째, “나 옛날 살던 동네 같아요”이다. 지역경관의 정체성은 늘 보던 아름다움의 재발견과 재구성이다. 정영선 조경은 기억과 장소에 대한 환기장치로서의 풍경의 힘, 조형요소가 아닌 경험과 기억의 원형으로의 한국성, 과거의 현재성과 미래성, 옛것의 창의적 창발성 등을 보여주고 있다.

 

김 교수는 “전통의 형식적 재생산과 공각 작명에 그치는 예스러운 것, 상품가치화된 레트로 감성, 새롭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시대의 무한 브랜드 경쟁, 지속적으로 폐기되고 갱신되는 패스트디자인에 합류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넷째, “어? 여기 정선생님이 하셨나?”에서는 식물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영선 조경은 자연을 공부해서 얻은 식재 디자인 어휘를 가지고 있다. 식물은 물철쭉, 꼬리풀, 할미꽃, 병아리꽃나무, 히어리, 생강나무, 미나리아재비 등 자생식물이 많다. 소나무 일변도의 식재 관행을 거부하고, 정영선이 좋아하는 식물이면서 지역에 잘 맞는 수종을 선택한다. 이는 지역적 고유성과 만나 풍부한 매트릭스를 만들어 낸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조경가는 지역에 기반한 설계를 하는 사람들인데 오히려 정영선의 시그니처가 된 느낌이기도 하다. 유행과 트랜드 상품으로서의 식물, 흙이 드러나지 않게 빡빡하게 심으라는 지침, 검증한 것이 아닌 획일화된 복붙의 혼합식재 등을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섯째는 “눈물겹게 아름다워요”로, 정영선 조경에 대한 반응은 예쁘다는 말보다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아름답다는 반응이 압도적이다. 이는 서식처 기반의 건강한 생태계의 내재적 아름다움, 경계 디자인으로 풀어내는 경관의 깊이와 몰입감, 시각적·표면적 아름다움을 넘어선 경험적·윤리적 미적 태도에 기반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최근 트렌드를 보면 대경관은 실종했고, 예쁜 것만 살아남는 시대의 소비재로서의 풍경 이미지가 강조되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 위기의식이 결여된 채 자연은 상품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여섯째, “공공이 해도 이럴 수 있다니”로, 조경은 국가 주도의 공공 프로젝트를 통해 성장하고 정착했으나 제도의 공백이 있고, 이 공백은 설계가의 헌신과 재능기부로 메우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풍요의 시대에 품질에 대한 치열함과 내부 성찰 능력은 빈곤하고, 설계의 기획-발주-심의-시공-감리 전반의 제도적인 기반은 미약하다. 조경설계에 대한 비판적·비평적 담론과 실천이 부재하기도 하다고 짚었다.

 

일곱 번째, “꼭 호미 들어야 되요?”이다. 호미가 상징하는 것은 땅과의 교감, 관찰의 방식, 직업윤리와 책임감이다. 호미는 작가적 태도로 직접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현장 감독 권력을 가진 자의 도구이자 완성도에 대한 전문가적 집착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호미는 개인을 넘어서는 강력한 아이콘이자 상징으로 작동한다. 다만 호미에 대한 대중적인 인식은 원예적 스케일로, 조경의 범위와 조경의 역할에 대한 대중적인 인식을 제한한다는 우려도 있다. 조경산업의 고도화 및 첨단화와의 관계성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국토는 하나의 정원입니다”이다. ‘정원을 만들기 위해 먼저 쓰레기를 치우고 땅을 다듬어야 한다’, ‘잠시 빌려 쓰는 땅에 대한 헌사’라는 정영선의 표현에서 국토가 정원이라는 말은 개별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국토경관의 아름다움과 총체성을 함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정원의 본질, 지구적 위기의식, 국토 가꾸기의 철학이 상실된 채 행정가의 언어가 되어 각종 정원 관련 사업이 시행되고 있고, 장식과 행사 중심의 정원도시, 행정으로서의 가드닝이 되어가고 있으며, 국토가 정원 테마파크화 되고 있다고 피력했다.

 

김 교수는 “정영선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답다’라는 말이다. 이것이 정영선이 설계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철학이라는 생각이다. 조경가 정영선의 작업은 한국조경 50년의 중요한 질적 변화를 가져오는 변곡점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가 만든 풍부한 자산과 변화를 우리 시대 살아있는 유산으로 만드는 일은 우리 세대의 몫이다”라고 전했다.

 

 

 

세션2에서는 ▲협업 파트너, 서안의 유산(박승진 디자인스튜디오 loci 소장, 전은정 조경포레 소장) ▲전이세대의 관찰과 시도(이호영 HLD 소장, 조용준 CA 소장) ▲다음세대의 해석과 수용(김선미 동아일보 기자, 백규리 현대엔지니어링 건축조경팀 매니저) 세 가지 주제로 꾸려졌다.

 

협업 파트너, 서안의 유산

 

박승진 소장은 “설계자들이 공간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설계자의 욕심이 들어가면서 자칫 과해지거나 너무 단순하고 절제된 방법으로 설계를 풀어나갈 수 있다. 결국은 설계자가 결정하고 실행해야 하는데, 그 기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며 조경설계의 모든 요소가 총출동한 ‘서울아산병원’과 최소의 디자인인 ‘뉴욕 원다르마 센터’를 도면과 함께 살펴봤다.

 

아산병원은 자연조건이 하나도 없는 건조한 환경에서 조경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으며, 기능적으로 필요한 공간, 도입해야 할 가치에 대해 중점을 두고 조경설계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넣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가장 편안한 의자, 땅이 보이지 않는 식물, 디테일한 식물의 모습들,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 수공간과 소리의 효과, 사람들이 울 수 있는 숨겨진 장소 등이다.

 

반면 원다르마 센터는 대상지 자체가 광활하고 완만한 구릉의 훌륭한 경관이었고, 설계를 위해 답사하면서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결론이 도출됐다. 땅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최선이기에 땅을 면밀히 분석하고, 명상할 수 있는 좋은 길 하나만 만들어도 성공하는 생각이었다. 길이 한 번에 드러나지 않고 이어졌다가 사라지고 다시 이어지는 풍경을 만들었다. 이는 굉장히 힘든 결단일 수 있다.

 

박승진 소장은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주장해 클라이언트를 설득할 수 있는 것은 설계가의 태도이다. 그리고 그 기반은 땅을 이해하는 태도를 온전히 실천하고 진심으로 전달하는 것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전은정 소장은 선유도공원과 올림픽미술관 조각공원 설계 당시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선유도공원 현상설계 당시 정영선 조경가는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는데 크게 열려있었으며 협업에 굉장히 포용적이었다. 특히 건축가와의 협업을 자주 강조하면서 친구처럼 지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고 한다.

 

올림픽 미술관과 조각공원 설계 때는 왜 해야하는 지도 모르고 미술관 사업계획, 운영계획, 이벤트계획, 문화예술 아카데미 등까지 다 조사했어야 했는데 그것이 현상설계하는데 다 도움이 되는 것들이었다고 회고했다.

 

전은정 소장은 “정영선 조경가와 함께 일을 하면서 배운 것은 디자인은 물론이고 협업, 소통의 중요성이었다. 모든 프로젝트를 씨앗을 뿌린다는 마음으로 임했던 것이 유산으로 남아있다”고 전했다.

 

전이세대의 관찰과 시도 

 

이호영 HLD 소장은 서안에 있을 당시 정영선 조경가의 스케치, 작업물, 보고서 등을 찾아보면서 분석하고 공부했던 것들을 소개했다. 

 

광교 호수공원 현상설계 당시 하루종일 정영선 조경가와 대상지를 답사하며 ‘어두운 골짜기에 일찍 싹을 트는 귀룽나무를 심으면 좋겠다, 호수 물가로 물풀을 심자, 축축한 들판에는 돌배나무가 좋겠다’ 등 조성해야 할 큰 경관에 대한 코멘트를 공유하며, 경관을 크게 보고 지역에 맞게 계획을 세우는 방법을 익혔다고 말했다. 아산병원은 참여한 프로젝트가 아니지만 자료를 찾아보며 식재에 패턴이 있음을 발견한 뒤 이것을 따로 정리해 숙어처럼 외웠다고도 했다.

 

땅을 읽는 것에서 시작하는 서안의 정산은 HLD의 작업에도 이어졌다. 아무도 들어가지 않던 숲이 무성하던 곳을 GPS로 길을 찾아 나서며 조사하면서 클라이언트의 신뢰를 얻었고, 사라져가는 식물과 경관을 걱정하던 태도는 한강의 자생식물을 채집해 전시하는 프로젝트를 낳았으며, 지역다운 것을 반영하기 위해 획일화되어가는 전국의 지방정원과 달리 영월의 지방정원은 동강의 생태와 영월의 지질 특성을 반영한 정원으로 설계했다.

 

이호영 소장은 “정영선 조경가가 한국조경의 특성을 ‘담담함’이라고 표현했던 것을 기억하며 자신의 설계는 담담함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늘 고뇌한다. 타협하고 싶다가도 샛강에서 옳은 것에 대한 생각을 포기하지 않고 치열하게 지켜낸 모습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기도 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조경가는 책임과 의무를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어려운 시기에 정영선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후배들에게 큰 힘이 된다”고 전했다.

 

조용준 CA조경 소장은 선유도공원을 이해하기 위해 계획안을 필사하며 느낀 것들을 공유했다. 공원 내 건축물의 규모와 유사한 공간 골격, 직선의 길이지만 한눈에 드러나지 않는 전이공간들, 공간이 바뀔 때마다 흥미로움을 자아내지만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차분하고 정체된 분위기, 전체 공간을 관통하지만 높낮이를 다르게 해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물의 사용, 소리에 집중하기 좋은 공간의 설계 등을 필사도면과 함께 공유했다.

 

그는 “연필로 세밀하게 그려진 과정 속 스케치의 분위기에 실게 공간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생각은 드로잉 스타일로 이어져 있고, 손으로 그려진 공간은 실게 공간의 분위기와 이어져 있다. 기존 시설들과 새로운 건축물, 이를 둘러싼 조경 사이에 주고받는 일종의 상호교류가 있다”고 소회했다.

 

다음세대의 해석과 수용

 

김선미 동아일보 기자는 아모레퍼시픽과 크리스티앙 디올의 공통점을 창업가의 철학과 헤리티지 경영, 전통을 혁신해 미래 세대와 만남, 식물을 테마로 한 브랜딩, 원료 식물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전파한 것을 꼽고, 원료식물원과 디올 성수를 통해 “조경가 정영선이야말로 어려움을 헤쳐나가려고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국의 산천을 신이 만든 정원이자 천국이라 말하며, 생물다양성에 대해 강조했던 정영선의 태도를 본받아 다음 세대에게 건강하고 아름다운 지구를 물려주기 위해 보다 치열하고 투쟁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백규리 매니저는 “다른 공종과 협업하지만 조경이 돋보이는 디자인, 건축 외관이 조경공간을 더욱 풍부하게 하는 배경이 되면서 조경 자체의 존재감도 강한 상징적 조화를 이루게 할 수는 없을까에 대한 고민의 해답을 아모레퍼시픽 본사에서 찾았다”며 답사 시 느낀 바와 에피소드를 공유했다.

 

바깥 풍경을 즐길 수 있는 대청마루와 닮은 지상층, 건물의 모든 창을 통해 즐길 수 있는 차경, 햇빛이 들지 않는 건물의 보이드에 깊은 숲속의 분위기를 연출하며, 층고가 높아질수록 고지대에 사는 식물로 식재가 바뀌는 모습 등을 짚었다.

 

백규리 매니저는 “모던한 건물에서 대청마루, 차경, 대들보와 같은 한국적 언어가 읽히는 이유는 건물 안팎에서 어우러지는 조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건축을 통해 조경을 선명히 드러내고 건축과 조경 모두 한국의 고유한 가치를 담아 경관의 지속성을 갖게 하는 것이 다음 세대 조경가로서 가져야 할 자세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정영선과의 대화


마지막 세션은 정영선 조경가(서안 대표)와 조경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배형민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과 교수가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선 포스터 배경으로 사용된 남해 사우스 스케이프의 바위에 대해 정영선 조경가는 “근사한 바위가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호미와 망치를 들고 일일이 손으로 다시 다듬은 바위다. 주변 경관과 어울리도록 한 조경가가 만든 조각이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희원에 대해서는 “오픈식에 나라를 진두지위할 수 있는 분들이 많이 오셨는데, 이들이 공장, 사업체, 연수원, 학교 등 모든 시설을 짓기 전에 먼저 주변 경관을 둘러볼 수 있는 자세를 가질 수만 있게 된다면 점점 조경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면서 희원을 설명했다”고 말했다.

 

이어 “위기에 처한 지구를 살기 좋은 지구로 만들기 위해서는 조경가가 나서야 한다. 우리나라가 바뀌려면 조경인이 먼저 경관을 보는 눈,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능력을 기르고, 이를 전파하기 위한 설득력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번 전시가 시민들에게 산과 강, 바다를 바르게 이용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더할나위 없겠다”고 전했다.

 

배형민 교수는 “유명 건축가의 작품을 가보면 정영선의 조경이 있다. 건축과 조경이 어우러졌을 때 가장 훌륭한 점은 건축, 조경, 도시의 영역을 구분하지 않고 우리가 사는 공간이라는 것을 인식하게끔 하는 것”이라는 소감을 전했다.

 

조경진 교수는 “기후위기 시대에 자연과 인간이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온 한 조경가의 삶과 작품을 살피며 존재했지만 역사화되지 않은 서사를 오늘의 시점에서 새롭게 제시하는 시간이었다. 불안정한 조건을 돌파하셨던 힘은 개인 기량으로부터 나왔지만 미래 세대에게는 개인이 아닌 법과 제도, 시스템의 개선과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며, 문제 해결을 위한 치열함이 우리에게 던져진 과제일 것이다”라고 마무리했다.


글·사진_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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