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스케이프 디자인의 시좌』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랜드스케이프라는 단어는 “건축, 토목, 조경, 도시계획 뿐만 아니라 생태학이나 지리학, 심지어 문화인류학에 이르기까지 공간과 환경을 직간접 대상으로 하는 모든 분야”에 받아들여져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폭넓게 쓰이게 되었다. 조경가들은 이처럼 랜드스케이프가 다양하게 활용되는 것에 대해 두 가지 상반되는 입장을 취해왔다. 그 하나는 조경의 영역이 확장될 것이라는 기대감이고, 다른 하나는 조경의 업역이 침범당할 수 있다는 우려감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와 같은 랜드스케이프를 둘러싼 조경가들의 모순적인 태도는 기실 조경의 양의성에 기인한다. 미학적 개념으로서의 ‘풍경’ vs 과학적 개념으로서의 ‘환경’, 경관 속에 내재하는 ‘허구’ vs '현실‘ 등 조경의 복합적인 성격이 조경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조경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몇 가지 키워드를 통해 다양한 각도에서 조경의 업역을 들여다보기 위한 시좌視座, 즉 사물을 보는 입장의 위치와 그곳으로부터 보이는 상을 집어넣는 틀과 그것들을 지지하는 가치관에 대해 정리하였다.
제목이 좀 생경스러운 감이 있지만, “모더니즘, 소재, 에콜로지, 미술, 타 분야와의 협업, 관련 제도, 풍경” 등 각 장의 주요 키워드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근대 조경의 역사와 최신 경향, 조경의 본질과 특성에 대한 자신만의 다양하고 깊이 있는 시각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다양한 조경가와 조경 작품에 대한 정보 및 우리와 가까운 일본 조경계의 변천사도 엿볼 수 있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이 책은 다분히 ‘조경가적 입장에서 쓰여진 랜드스케이프 디자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Landscape Architecture가 조경학으로, Landscape Design이 조경설계로 번역됨이 조경학을 전공한 사람에게는 전혀 무리 없이 통용됩니다만, 이 책에서의 입장은 마치 랜드스케이프 디자인을 조경의 범주 밖의 것으로 보는 듯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조경 분야에 대한 자기 부정이 아니라, 종래의 조경이 일단 학문 분야로서 존재하였지만 그 분야 내에는 복합적이고 다학문적인 관련 분야가 포함되어 있고, 근대 이후 생태학이나 미술뿐만 아니라 사회적,문화적 흐름 속에서 부단히 자신의 직능을 확대해오면서 조경 분야가 가질 수밖에 없었던 다면성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아보려는 고민의 키워드들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조경을 과학으로 보는가, 예술로 보는가라는 양의적兩義的 사고에서 자유로워지고, 생태학이나 환경예술, 건축으로부터도 해방되어, 정체성을 갖고자 하는 랜드스케이프 디자인 나름대로의 홀로서기의 모색이 들어있음이 읽혀진다면, 원서의 의도를 전달한 것으로 다행이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