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환경 문제와 도시설계
지난 해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김세훈 교수와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윤정원 교수는 ‘베트남-캄보디아의 비정형적 커뮤니티: 환경 문제와 도시설계’라는 이름으로 도시설계학전공 수업을 진행했다. 조경, 생태, 건축, 도시설계 등 다양한 전공의 석사과정 학생들이 참여했고, 이들은 낯선 장소(프놈펜의 보엥칵 호수와 다낭의 호아안 지구)에 대한 상상력을 키우는 도시설계 과정을 경험했다. 총 16명의 학생들이 참여했지만, 지면 관계상 신수경, 심지수, 이슬, 이희원, 김나영, 김선혜, 유지연, 최경인 등 8명의 작품만 소개한다.
“ 한 남자가 가게에 가서 햄버거를 주문했다. 하지만 주문한 햄버거는 검게 탄 채로 나왔고, 남자는 화가 나서 가게를 박차고 나왔다. 자, 이제 질문이다. ‘이 남자는 햄버거를 먹었을까?’ 아마도 당신은 ‘아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러한 질문은 어떨까. 한 남자가 햄버거를 주문했다. 주문한 햄버거가 나왔을 때 이 남자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가게를 나서며 종업원에게 후하게 팁을 주었다. 자, 이제 또 질문이다. ‘이 남자는 햄버거를 먹었을까?’
아마도 당신은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같은 이야기와 질문을 이제 사람이 아닌, 컴퓨터 프로그램에게 해보자. 이 프로그램이 정황을 파악할 수 있게끔 필요한 정보를 입력하고, 위의 질문을 받았을 때 사람과 같은 답을 종이에 인쇄할 수 있도록 준비하자."
생크 프로그램Schank Program
참여 학생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대상지를 수업에서 다루는 일 자체가 큰 모험이자 도전이다. 해외 대상지를 다루는 교과과정의 의의에 대해 생각해보자. 미국의 인공지능 전문가이자 교육철학자 로저 생크Roger Schank는 1970년대에 햄버거 주문에 관한 상황을 통해, 이야기를 이해하는 인간의 능력에 대한 질문을 던진 바 있다. 인간과 생크 프로그램은 같은 이야기를 들었고, 결과적으로 같은 질문에 대해 같은 답을 했다. 그렇다면 생크 프로그램도 인간처럼 이 남자와 햄버거에 대한 이야기를 이해했을까? 이에 대한 답은 두 가지가 될 수 있다. 첫째, 이해하지 못했다. 생크 프로그램은 인간에 의해 주입된 조건을 기계적으로 해석했다. 따라서 해석의 결과가 정답인지 아닌지를 떠나 본질적인 의미에서 남자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햄버거를 먹었는지 파악했다고는 볼 수 없다. 둘째, 이해했다. 왜냐하면 이야기의 정황에 대해 사람이나 프로그램이나 거의 같은 정보를 획득했고, 남자가 햄버거를 먹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린 과정 자체가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질문을 본 스튜디오에도 대입할 수 있다. 이를테면 스튜디오의 학생들이 설계 대상지에 대한 일차적인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도 장소에 대한 복합적인 이야기를 이해하고 지역적 문제를 파악하여 물리적 환경을 제안할 수 있는가? 조금 단언적으로 말해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 대해 설계안을 만드는 것은 현대의 도시설계가에게 필수적 능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현대 도시의 미래를 결정짓는 수많은 디자인 행위가 대상지에 익숙하지 않은 상황 혹은 익숙해질 만한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를테면 다국적 도시설계 기업들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도시의 마스터플랜을 만들어내고 있고, 그 일부는 빠른 속도로 현실화되고 있다. 하지만 설계에 참여하는 집단 내의 극소수만이 실제 대상지를 여러 차례 방문하여 그곳에 익숙해질 수 있는 사치 아닌 사치를 누리고 있다. 더욱이 정치적인 문제로 입국 자체가 어려운 나라도 있으며, 설사 입국 자체가 문제는 아니더라도 접근이 불가능하거나 건축주가 대상지의 노출을 꺼리는 사례도 종종 있다. 따라서 경험해보지 못한 장소에 대한 상상력을 키우는 것이 본 스튜디오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다.
- 김세훈ㆍ윤정원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