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전시: 체크포인트’ DMZ를 바라보는 현대미술가 27명의 시선 - 1

동시대 예술의 관점에서 DMZ의 의미, 생태, 화해와 연대의 의미 환기
라펜트l전지은 기자l기사입력2023-09-27
경기도와 경기관광공사는 경기도 DMZ 일대에서 8월 31일부터 11월 5일까지 현대 미술 전시 ‘DMZ 전시: 체크포인트’를 개최했다.

이번 전시는 2023년 DMZ 오픈 페스티벌의 영역 중 하나로 1부와 2부로 나누어 8월 31일부터 9월 23일까지 파주, 10월 6일부터 11월 5일까지는 연천에서 진행한다.

‘DMZ 전시: 체크포인트’ 27명의 국내 외·현대미술 작가들이 참여한 전시회로 한국의 분단 상황과 디엠지 접경지역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를 예술작품으로 표현했다.

이번 김선정 DMZ 전시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는 DMZ라는 장소를 여러 다른 시선에서 다룬다. DMZ를 바라보는 예술가의 시선은 무거운 역사와 정치에 비해 어쩌면 감성적이고 가벼워 보일 수 있지만, 이 가벼움 안에 여러 층위의 생각과 상상이 담겨 어느 곳으로든 날아가 새로운 이야기를 싹틔울 씨앗처럼 퍼져나갈 것”이라고 전시의 의의를 밝혔다.


정소영

정소영, 환상통, 2023, 자연석, 스테인레스판, 베어링 약 140×90×60㎝, 40×60×70㎝ / 사진 아인아


전시 전경 / 경기관광공사 제공

환상통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신체의 부위에서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각각 한 면이 절단된 두 개의 돌은 본래 서로 하나였는지 혹은 다른 두 개의 돌이었는지 알 수 없다. 지속적으로 빛과 위치에 따라 변화하며 보이는 절단된 돌의 형상은 과거 돌의 형상과는 무관하게 새로운 모습을 보인다. 잘려 나간 돌 위에 계속해서 변하는 금속에 몸을 붙여 존재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불확정적 상태는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르게 지각하고 기억하는 존재-부재의 상황에 놓여 있다. 전망대에 올라서서 풍경을 바라보는 동안 우리는 인식 속에서 사라지고 없는 부분을 감각하는 모순된 상황에 놓이고, 물리적 존재의 유무보다 기억의 작동에 더 강한 영향을 받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토모코 요네다

토모코 요네다, 마을 - 남한과 북한 사이의 서부전선 전경, 2006, 철구조물, 나무판넬, 천에 UV 프린트, 237.5×300㎝ / 작가 및 Shugo Arts 제공


토모코 요네다, 지뢰밭 - 대한민국 파주시 비무장지대 내 관광지 주변에 위치한 지뢰밭 전경, 2006/2023, 철구조물, 나무판넬, 천에 UV 프린트, 237.5×300㎝ / 작가 및 Shugo Arts 제공


토모코 요네다, 일제강점기 얼음 창고 외벽의 폭격 흔적(DMZ인근의 철원, 대한민국, 한국전쟁터), 2015, 크로모제닉 프린트, 65×83㎝
 / 작가 및 Shugo Arts 제공


토모코 요네다, 얽힌 철조망과 꽃(DMZ인근의 철원, 대한민국), 2015, 크로모제닉 프린트, 
65×83㎝ / 작가 및 Shugo Arts 제공


전시 전경 / 경기관광공사 제공


전시 전경 / 경기관광공사 제공

한반도를 가르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약 4㎞에 걸친 DMZ에는 다수의 지뢰가 매장되어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된다. DMZ는 국경이 아닌 1953년 7월 27일 발효된 한국전쟁 휴전협정에 따라 생긴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기에 우리로 하여금 여전히 한반도가 전시 중임을 인지시킨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DMZ는 야생동식물의 독자적인 생태계가 형성된 평화로운 자연 낙원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제로부터 해방 독립한 한반도는 남북으로 분단되어 냉전 시대의 서막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다시 초토화되었다. 하나로 이어진 땅과 사람을 둘로 나눈 이 비무장지대 주변에는 인간이 그은 경계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같은 태양과 하늘 아래 온화한 꽃들이 피어난다. 꽃, 풀 그리고 나무들은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또 저항하며 흔들리고 있다. 자연은 인간이 만들어 낸 경계와 이데올로기적 개념이 없는 공간을 자유롭게 오가며 떠돌아다닌다. 이는 동시에 개인이라는 작은 존재가 국가, 사회, 종교 등 큰 집단에 편입되어 운명에 휘둘리는 모습을 비추고 있다.


이끼바위쿠르르

이끼바위쿠르르, 덩굴: 경계와 흔적, 2023, 식물 캔버스 위에 아크릴, 160×1800㎝ / 작가 제공


전시 전경 / 경기관광공사 제공

이끼바위쿠르르는 DMZ 일대 식물을 채집해 그것을 파노라마 형식으로 구성을 한 그라피티 작품을 벽면에 선보인다. DMZ는 사람이 일상적으로 접근이 불가능한 곳인 동시에 식물들의 자생이 가능한 역설로 잠식된 공간이다. 이곳은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기에 인식하지 못하는, 숨겨진 공간, 일종의 어떤 ‘틈’과 같다. 긴장의 공간임과 동시에 완충지대인 역할을 하는 이곳에서 식물은 허용된 침입자이다. 이끼바위쿠르르는 파고드는 덩굴들의 흔적을 기록하는 동시에 이 공간에 대한 애도의 의미를 담아 보여 주고 있다.


이재석

이재석, 텐트를 설치하는 방법 1-4, 2020, 캔버스에 아크릴, 130×130㎝×4패널 / 작가 및 갤러리바톤 제공


전시 전경 / 경기관광공사 제공

이재석은 군대에서의 자전적 경험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수년간 신체와 물체의 구성 요소가 지닌 유사성을 발견하는 것을 주제로 작업을 하고 있다. 작가는 코로나19로 인해 실내외의 경계가 명확해진 시대적 변화와 군중을 피해 자연으로 떠나기 시작한 사람들의 모습을 ‘안’과 ‘밖’이라는 양가적 속성을 지닌 ‘텐트’라는 소재로 표현한다. 이러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구조와 설치 방법을 체득한 군용 텐트로 연계되었으며, 텐트라는 구조물의 구성 요소인 폴대와 로프 그리고 천의 상호작용에 집중하여 ‘텐트를 설치하는 방법’ 연작을 완성하였다.


옥승철

옥승철, 녹색 광선(좌), 2023, 캔버스에 아크릴, 150×120㎝ / 작가 제공


옥승철,
 구름(우), 2023, 캔버스에 아크릴, 150×120㎝ / 작가 제공


전시 전경 / 경기관광공사 제공

‘녹색 광선’과 ‘구름’은 만화에서 보이는 상징을 선택·편집하는 시리즈다. 레이저의 사격 폭발의 한 장면을 멈춰 놓은 듯한 이미지는 이념, 인종 폭, 력 전, 쟁 사이의 첨예한 갈등을 표현한다. 두 회화는 모두 적과 아군 사, 건의 원인과 결과를 전혀 드러내지 않도록 편집되었다. 다만 DMZ의 맥락에서 현재 진행 중인 사건들과 일시 정지된 우리의 역사가 겹쳐 보이기를 의도했다.


성립

성립, 아래에는, 2023, 천 위에 디지털 프린트, 325×65㎝×2폭 / 작가 제공


전시 전경 / 경기관광공사 제공

DMZ 안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영원하진 않으나 끊임없이 순환한다. 때때로 자연은 화재 등으로 모두 소실되듯 보이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화마의 흔적이 사라지면 다시 새로운 싹을 틔운다. DMZ의 자연은 밤과 낮, 그리고 여러 계절을 거치며 자연의 법칙에 따라 무한 재생되고 있다. ‘아래에는’이 이처럼 반복과 변화를 거듭하는 DMZ 자연의 경이로움을 드로잉과 영상으로 선보인다. 흙 아래에서 식물들은 뿌리가 뒤엉켜 군집을 이루며 자라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고, 또 새로운 종자를 만들기도 하고, 생태계를 유지하며 살아갈 것이다.


박보마

박보마, 초록의 실제, 2023, 생화에 페인트, 향, 스펀지, 비즈, 은방울, 실, 스틸, 교체 매뉴얼, 가변크기 / 작가 제공


전시 전경 / 경기관광공사 제공

이 작업은 38선을 두고 4㎞씩 유격을 둔 DMZ를 전망대에서 보면서 ‘천국’같다고 느낀 일에서 출발한다. 국가라는 개념, 인공적인 무엇으로부터 벗어나 있는(벗어나 보이는) 자연의 이미지를 보며 낯선 감정을 느꼈다. 그 자연이 그저 이미지-스펙터클로만 존재하는 것에 대한 감정이었던 것 같다. ‘존재하지 않는 곳을 경험할 수 있을까?’ 그 천국에 들어가 가까이 경험하는 비밀스러운 상황을 상상한다. 실제는 범적이고 인공적인 경험이다. 전망대의 관측경에서 보이는 이미지와 다른 향이 묻어 있어 시각적인 정보가 주를 이루는 이상화되는 관측 경험을 다르게 만드는 작업이 떠올랐다. 그 다른 향은 어디서부터 왔고 어디까지 이어지며 또 어디서 나는 향일까?


킴 웨스트팔

킴 웨스트팔, 아이소트리아메데올로지스, 다시 꿈꾸는 DMZ(좌), 2022, 천에 터프팅된 오간자 리본, 114.3×127㎝ / 작가 제공


킴 웨스트팔, 석곡, 다시 꿈꾸는 DMZ(우), 2022. 천에 터프팅된 오간자 리본, 119.3×134.6㎝ / 작가 제공


전시 전경 / 경기관광공사 제공

‘다시 꿈꾸는 DMZ’ 연작은 비무장지대의 자연이 보존된 곳에서 자라는 난초를 우연히 발견하고 관찰한 작업이다. 작가는 2022년 고성의 DMZ를 방문하여 그곳에서 서식하는 동식물을 보았다. 이 난초들은 비무장화된 지역에서 사람의 접근이 거의 허용되지 않는 곳에 번식하고 있기에 과거와 미래에도 계속해서 살아갈 것이다. 이것은 미국이 한국에 개입하여 남긴 유산과 자연의 야생성과 아름다움 사이의 변증법들로 위기 속에서 묘한 기회를 만들어낸 것과 같다.


이우성

이우성,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여기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2021, 천에 아크릴릭과슈
, 아크릴, 수채, 200×410㎝ / 리얼디엠지프로젝트 제공


전시 전경 / 경기관광공사 제공

서울을 기반으로 작업하는 이우성은 2021년 여름 경기도 김포에 자리한 야산인 애기봉에 방문했다. 한국전쟁 당시 154고지라고 불리며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던 애기봉은 북한의 해물선전마을과 불과 1.5㎞의 거리에 자리한다. 애기봉 앞에는 한강, 임진강 그리고 예성강이 모여 서해로 흐르는 마지막 구간인 조강이 자리한다. 작가는 조강 너머 흐릿하게 보이는 북녘땅을 바라보며 개인으로서 흡수했던 북한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북한 땅 어딘가에 있을 이름 모를 한 사람의 이야기, 특히 정치와 이념의 싸움 속에서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을 겪어야 했을 누군가를 상상했다. 작품 제목인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여기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는 작가가 북한에 있을 ‘그’에게 건네는 인사말이다. 답사 당시 흐린 날씨 때문에 망원경 렌즈를 통해 겨우 바라보아야 했던 저 너머의 풍경은 밝은 분홍빛 천 위에 더욱 선명하게 표현되었다. 작가는 4미터 너비의 천 위에 그가 보고 상상한 것을 충실히 담아내었다.
_ 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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