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윈터가든으로의 초대
홍광표 논설위원(동국대 조경학과 교수, (사)한국정원디자인학회 회장)라펜트l홍광표 교수l기사입력2019-01-27
윈터가든으로의 초대
글_홍광표(동국대 조경학과 교수,
(사)한국정원디자인학회 회장
정원은 겨울이 되면 삭막해진다. 낙엽수는 물론이고 초화류 역시 잎을 떨어뜨리거나 소멸되어 볼 것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겨울이 되어야 아름다운 정원도 있다. 바로 윈터가든이다. 윈터가든은 겨울철에 꽃이나 잎 또는 열매 등이 아름다운 색감을 보이거나, 수피나 수형이 특별하거나, 마른 꽃이나 마른 풀들이 독특한 미감을 가져 관상의 대상이 되는 정원을 말한다. 물론 이러한 볼거리들이 상록성 식물들과 조화를 이룬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일 것이다.
정원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던 때에는 윈터가든이라는 개념조차도 알지 못했던 것이 우리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정원은 꽃이 피고 잎이 푸르거나 단풍이 들어 울긋불긋해질 때 관상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윈터가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몇몇 식물원이 윈터가든을 조성하고 정원애호가들을 초대하고 있다.
윈터가든은 정원의 나라인 영국에서 조성이 시작되었다. 1951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식물원에 작은 규모로 만든 윈터가든이 영국 최초의 윈터가든이라고 하니 그 역사가 그렇게 길지는 않은 편이다. 그 후 가드너 아드리안 블룸(Adrian Bloom)에 의해서 윈터가든에 대한 다양한 실험이 있었고, 케임브리지대학 식물원의 윈터가든이 리모델링되면서 점차 많은 윈터가든이 조성되었다. 그 결과 이제는 영국 각지에 다양한 소재와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윈터가든이 다수 조성되었고, 겨울철에도 정원의 아름다움을 완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고 있다.
윈터가든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식물소재가 겨울철에도 생육이 가능하고 볼거리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과거에 윈터가든을 만들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은 겨울철에 관상가치가 있는 식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식물소재들이 개발되거나 수입되어 이전에 보지 못했던 식물들이 늘어났으며, 다양한 실험을 통해서 윈터가든에 쓸 수 있는 소재들이 많아진 까닭에 윈터가든을 만드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게 되었다. 특히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까지도 정원에 많이 도입하고 있는 여러 종류의 그라스류들이 윈터가든의 정취를 제대로 살려주고 있으며, 흰말채나무(Cornus alba)나 노랑말채나무(Cornus sericea)의 빨갛고 노란 수피, 버드나무류의 비단처럼 벗겨지는 여러 색상의 수피, 자크몽 자작나무(Betula utilis var. jacquemontii)의 눈부실 정도의 흰색 수피 그리고 미국낙상홍(Ilex verticillata), 꽃사과나무(Malus floribunda), 황산계수나무(Skimmia japonica) 등에 달리는 빨간 열매, 헬레보루스(Helleborus), 스노우 드롭(Galanthus elwesii), 털머위(Farfugium japonicum) 등이 피워내는 겨울 꽃, 풍년화(Hamamelis virginiana)와 납매(Chimonanthus praecox)의 샛노란 겨울 꽃, 목수국(Hydrangea paniculata Siebold)에 남아있는 마른 꽃, 참비늘고사리(Ddryopteris sieboldii)를 비롯한 다양한 모양의 양치식물류의 특이함, 게다가 뿔남천(Mahonia japonica (Thunb.) DC.), 호랑가시나무(Ilex cornuta Lindl. & Paxton), 꽝꽝나무(Ilex crenata Thunb.) 등의 상록활엽수나 소나무 같은 상록침엽수가 윈터가든의 풍부한 아름다움을 연출하는데 쓰이고 있다.
식물소재가 다양한 것은 기후가 그러한 소재들을 품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습도와 온도는 겨울철에 식물이 견디고 제대로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드는 중요한 조건이 된다. 영국에서 윈터가든이 잘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습도가 높기 때문이다. 공중습도가 높아야 잎이나 수피의 색과 꽃과 열매의 색이 선명해지고 싱싱해진다. 물론 온도 역시 식물에 미치는 영향이 커서 기온이 지속적으로 영하의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에는 뿌리가 얼어서 생육자체가 안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겨울에 매섭고 건조한 북서풍이 불어오게 되면 식물에게는 치명적인 동해를 입히게 된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나타나는 겨울철의 온도와 습도의 문제는 윈터가든을 조성하는데 있어서 매우 불리한 조건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윈터가든의 조성이 늘어날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백두대간수목원을 비롯해서 여러 수목원이나 식물원에서 윈터가든을 계획하고 있으며, 민간이 조성하는 정원에서도 윈터가든의 조성이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의 마을정원가꾸기 사업을 자문하는 자리에서 강원도처럼 겨울이 긴 곳이야말로 윈터가든이라는 정원의 유형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덧붙이기를 식물소재의 선택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야 한다는 주문도 잊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윈터가든은 지금까지 3계절형으로 운영되어 온 정원을 4계절형으로 바꿔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존재가 될 것이다. 특히 지금과 같은 정원의 시대에 정원문화의 확산을 유도하고, 정원을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의 대상으로 키워내기 위해서는 계절에 상관없이 정원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정원산업의 발전과 육성을 위해서도 중요한 요건이 될 것이 분명하다.
지금까지 국내외의 윈터가든을 돌아본 결과 윈터가든 조성에 있어 유념해야할 점 몇 가지를 이야기해본다. 먼저 우리나라의 윈터가든은 우리나라의 환경에 맞는 식물소재를 사용하여 조성하는 것이 좋겠다. 굳이 기후환경이 영국과 같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영국의 윈터가든에서 사용하는 소재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소나무(松), 대나무(竹), 매화나무(梅)를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하여 추운 겨울에 만날 수 있는 세 친구로 꼽아왔다. 또한 상고대(Rime)라 하여 나무에 핀 얼음꽃(樹氷) 또는 무빙(霧氷)을 겨울철 최고의 아름다움이라고 상찬하기도 했다. 이것을 보면, 윈터가든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나라에서도 겨울철에 관상할 수 있는 정원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다음으로 윈터가든을 멀리 있는 수목원이나 식물원 혹은 법적 지위를 가진 정원에만 조성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을 보내고 있는 도시에 만들기를 권해본다. 삭막한 도시환경은 겨울이 되면 더욱 더 사람들의 마음을 얼어붙게 한다. 그런데 도시 곳곳에 윈터가든을 만들어놓는다면 추운 겨울철 도시에서 정원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대도시에는 윈터가든을 만들 수 있는 자투리땅들이 많이 남아있으며, 큰 건물 주변의 공개공지에도 조성의 여지가 많다. 심지어는 수직정원에도 윈터가든의 개념을 도입할 수 있으니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윈터가든을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윈터가든은 겨울철에만 정원의 기능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봄부터 겨울까지 4계절 모두 볼거리가 충만해야 하므로 계절의 변화에 대응해서 아름다움을 줄 수 있는 식물종의 도입과 식재가 요구된다. 더불어 상록수와 낙엽수의 조화, 교목과 관목의 조화, 목본과 초본의 조화까지 생각해서 식물종을 선정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여기에다 식물을 다층적으로 식재해서 정원식물이 다양하게 자기의 모습을 연출하면서 동시에 종간의 어울림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도 필요한데, 이렇게 한다면 완성도가 높은 윈터가든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윈터가든은 우리나라에서도 더 이상 헛된 꿈이나 욕심이 아니다. 그리고 윈터가든에 특별한 원칙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한국적 윈터가든을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벌써 여러 곳에서 윈터가든에 대한 실험이 이루어져서 우리나라에서도 윈터가든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는 확인했다고 본다. 그러하니 우리도 주변에서 다양한 유형의 윈터가든을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며, 아름다운 윈터가든으로 초대받을 날도 멀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상상컨데 우리가 윈터가든으로 초대를 받는다면 이런 말 한마디쯤 해보면 어떨까?
아이야! 몸과 마음이 고달픈 우리가 윈터가든을 찾으면, 비발디의 4계중 겨울을 듣게 해주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실 수 있게 해주지 않으련?
사빌가든(The Savill Garden), Egham, England
하롤드 힐리어가든(Sir Harold Hillier Garden & Arboretum), Romsey, England
마크스 홀 가든(Marks Hall Gardens and Arboretum), Colchester, England
브와 마흐끼정원(La Jardin Du Bois-Marquis), Vernioz, France
브와 마흐끼정원(La Jardin Du Bois-Marquis), Vernioz, France
- 글·사진 _ 홍광표 교수 · 동국대학교 조경학과
-
다른기사 보기
hkp@dongguk.ac.kr
기획특집·연재기사
- · [녹색시선] 에너지 위기와 데이터기반 그린인프라
- · [녹색시선] 새롭게 도입된 우리나라 기후영향평가 제도의 활성화를 위한 기대와 과제
- · [녹색시선] 진짜 조경은 드로잉으로만 존재한다
- · [녹색시선] 누구를 위한 정원인가
- · [녹색시선] 2022년 용산 국가공원은 안녕하신가?
- · [녹색시선] 누가 조경가인가?
- · [녹색시선] 식목일, 그리고 왕벚나무와 목련
- · [녹색시선] 국가도시공원이라는 대선 공약
- · [녹색시선] 옥상! 도시의 방치된 갯벌이다! 우리의 미래자원이다!
- · [녹색시선] 동지들에게 고함
- · [녹색시선] 정원식물 그 이상의 가치, 자생식물
- · [녹색시선] 3년 그리고 세 명의 시장
- · [녹색시선] 신입사원 모집 공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