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창가의 단상
글_성장환 논설주간(LH 토지주택연구원 국토지역연구실 실장)창가의 단상
성장환 논설주간(LH 토지주택연구원)
싸릿눈이 한참 휘날리던 지난겨울 어느 날 문득, 연구원 2층에 자리 잡은 필자의 연구실 창가에 늘 서 있던 나무에 새집이 있다는 걸 발견하곤 무척 놀란 적이 있다. 여름에 이 방으로 거처를 옮기고 겨울이 다 되도록, 내 의자에서 불과 2미터도 안 되는 창가 나무에, 새의 집이 자라잡고 있다는 걸 새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들고 사진을 한 장 찍었다.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 기록해 두어야 할 것만 같았다. 여름 내내 새들이 날아와 재잘거리다 날아가도, 그저 잠시 쉬러 왔겠거니 여겼었지 그들의 보금자리가 내 보금자리 바로 앞에 나란히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바로 눈앞에서 새들이 살고 있는 집도 알아보지 못하면서 도시를 연구한다는 사실에 내심 나 자신을 돌아보게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그 일을 일상의 부스러기로 잊고 지낸지 몇 달이 지난 오늘, 그처럼 가물었던 시기이지만 마냥 반가울 수도 없는 비가내리고, 바람이 꽤 불기에 창문을 닫으려다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분명 지난 주까지만 해도 잘 보였던 새 집이 보이질 않는 것이다. 나무의 잎이 그사이 눈에 띄게 자라서 도저히 새집을 분간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 아 내가 못 알아 본 게 당연하구나, 도저히 찾아내기 어려운거였구나!...’ 필자는 지난 겨울 나를 질책했던 기억을 떠 올리며, 오히려 그 때의 생각이 짧았음을 깨달았다.
필자는 나무에 대해 문외한이나 마찬가지라, 이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이름도 잘 모른다. 그 걸 꼭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좀 더 친해지면, 더 관심을 가지고 알아보게 되려나... 그러나, 이 나무는 내게 세상 어떤 나무보다, 어떤 조경작품보다 소중하고 친근하다. 늘 무심코 하루에도 몇 번씩 쳐다보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주는 나무다.
또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한 장 찍는다. 너무나 다른 풍경이다. 겨울에 보였던 새집뿐만 아니라, 주차장의 차들도 나뭇가지 사이의 풍광의 자투리들도, 훌쩍 자란 나뭇잎들이 온통 초록빛으로 바꾸어 놓았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걸 보고는 바람이 부는 걸 알고, 잎사귀에 떨어지는 물방울들을 보고 비가 내리는 걸 안다. 그리고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것도...
도시에서 조경은 이런 게 아닌가 싶다. 내 가까이에 그리고 늘 내게 자연과 시간의 신호를 보내주는 비타민과 같은 존재. 주변의 녹색을 한번 쳐다보고는, 피로를 풀고, 활력을 찾고, 생각을 정리하고, 혼자가 아님을 느낀다.
'내 옆에 이런 나무가 있어주어서, 난 얼마나 행복한가!'
얼마 전, 서울시청광장에서 “조경, 도시의 꽃이 되다”라는 글귀를 본 기억이 난다. 뭔가 좀 아쉬웠다. 약하다고 해야 할까, 소극적이라고 해야 할까? 그냥 도시의 장식, 치장에 불과하다는 느낌이었다. 좀 더 도시인에게 필수적이고, 생동적인 표현은 없을까? 조경, 도시의 활력이 되다, 에너지가 되다 등... 그래야 조경이 도시개발에서도 가장 중요한 핵심분야로 자리잡게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 연재필자 _ 성장환 논설주간 · LH 토지주택연구원 국토지역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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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