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정수를 보여준 ‘설문대할망 정원’…“우리의 자연이 가장 한국적인 것”

[인터뷰] 2024 쇼몽 국제 가든 페스티벌 박정아·손경석 작가
라펜트l전지은 기자l기사입력2024-06-10


박정아·손경석 정원 디자이너 

 

올해 ‘쇼몽 국제 가든 페스티벌’에 박정아·손경석 작가의 ‘설문대할망 정원’이 조성됐다. 제주 자연의 정수를 보여준 이 정원은 관람객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쇼몽 국제 가든 페스티벌은 ‘정원의 회복력’, ‘이상적인 정원’, ‘정원의 생체모방’, ‘지구의 정원, 어머니의 땅’, ‘천국’, ‘사상의 정원’, ‘꽃의 힘’, ‘미래의 정원’, ‘수집정원’, ‘죄악의 정원’ 등 다양하고 독특한 주제로 실험적인 정원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올해의 주제는 ‘생명의 근원’이다. 꿀벌, 나비, 딱정벌레, 개미, 지렁이, 새, 다양한 동물들까지 상당수의 생명이 살고 있는 최고의 삶의 터전인 정원. 그러나 지구적 위기 앞에 유럽의 곤충은 75% 이상이 사라졌다. 쇼몽은 사람에게 필요한 그늘을 제공할 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는 장소인 정원을 보존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 말한다.

 

이 주제는 박정아·손경석 두 작가의 정원철학과 같아 이들은 기꺼이 도전하게 됐다.

 

 

설문대할망 정원

 

설문대할망은 제주섬 곳곳의 지형을 만들고, 섬 고유의 자연미를 생활환경으로 확장하는 것을 꿈꾸는 제주도 신화 속 여신이다. 그녀는 다양한 생태계를 세심하게 통합해 제주의 다양한 야생생물의 서식지를 제공하는 ‘생명의 정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처음 ‘설문대할망’을 테마로 잡게 된 것은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가장 독특한 ‘생명의 근원’ 자연환경을 찾다가 화산섬 제주를 떠올리게 되면서이다.

 

“해외 박람회이다 보니 해외에 우리나라의 자연경관을 보여줄 필요성을 느꼈다. 미약하지만 시작하는 의미로서 한국을 해외에 선보이자는 생각에 찾게 된 것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자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제주의 경관이다”

 

설문대할망 정원은 크게 ‘곶자왈정원’과 ‘제주정원’ 구분된다. 정원의 모티브가 된 제주의 허파, ‘곶자왈’은 열대성 식물이 사는 북방한계선과 한대성 식물의 남방한계선이 공존하는 숲으로 전 세계에서 유일한 생태지역이다.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것은 물론 우리나라에서 가장 깨끗한 물을 만드는 핵심지역이기도 하다.

 

생명이 탄생하기 위해서 근원적으로 필요한 것은 ‘물’이다. 정원에는 제주도의 생계 수단이자 섬에서의 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화적 상징인 ‘수반’이 조성됐다. 수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현무암은 구멍이 있어 공기와 물을 정화하고, 정화된 물이 수반에 모이면 그곳은 ‘생명의 근원’이 된다. 물이 있는 곳에서 이끼가 번식하고, 새싹이 돋아나고, 작은 곤충과 개구리가 서식하게 되면서 소생태계가 형성되고 자연이 움트기 시작한다. 그렇게 생명의 정원이 됐다.

 

‘제주정원’은 제주의 민가를 표현한 곳이다. 정원의 입구에는 제주의 ‘정낭’을 설치했다. 정낭은 제주의 전통가옥에서 대문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입구의 양쪽에 큰 돌을 세우고 나무를 가로로 걸쳐놓은 것이다. 걸쳐놓은 나무 개수에 따라 집주인의 소재를 알 수 있도록 하는 제주의 문화이다. 염원을 하며 쌓은 돌탑도 볼 수 있다.

 

정원 한 켠에 놓인 마루는 대청마루를 재해석한 것으로, 한국의 가옥문화를 모르는 외국인들도 자연스럽게 앉아 정원을 바라보게 된다. 그곳에 앉거나 누워있으면 이내 자연에 몰입하게 되고, 땅과 사람 사이의 독특한 연결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는 동시에 고요하고 깨달음을 주는 경험을 얻게 된다. 실제로 사람들은 마루에 앉아 정원을 바라보면서 ‘상징적이다’, ‘철학적이다’라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고.

 

곶자왈 숲, 이끼석, 고사목, 제주돌탑, 대청마루, 툇마루, 올레길...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을 이룬 한국의 살아있는 정원이다.

 


설문대할망 정원 ⓒDomaine de Chaumont-sur-Loire


설문대할망 정원 ⓒDomaine de Chaumont-sur-Loire
 

설문대할망 정원 ⓒDomaine de Chaumont-sur-Loire 

 

설문대할망 정원 ⓒDomaine de Chaumont-sur-Loire 

 

 

쇼몽은 ‘도전’의 연속

 

박정아·손경석 작가는 조경설계회사 DRA디자인그룹에서 조경설계를 주로 해오다 3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국내 작가정원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2022 코리아가든쇼 작가정원 ‘동행(同行)... 동인(同人)과의 산책’,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작가정원 ‘조우遭遇’, 제11회 경기정원문화박람회 전문정원 ‘다시, 자연에 시간’, 2023 LH 공공주택 작가정원 ‘한 숨의 한 스쿱의 숲’ 등이다. 단기간 내 가시적 성과를 이루고 해외 정원쇼에 도전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지원한 것이 이번 ‘2024 쇼몽 국제 가든 페스티벌’이다.

 

두 작가는 쇼몽에 정원을 조성하는 모든 과정 자체가 ‘도전’이었다 말한다. 선례가 많이 없기에 참고할 만한 자료나 그 과정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언어부터가 그나마 익숙한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다. 이들은 도전의 연속이었던 참가 과정을 들려주며 쇼몽에 참가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쇼몽 국제 가든 페스티벌 참가의 전체적인 과정은 우리나라 정원박람회와 비슷하지만 과정마다 명확하게 하는 것들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공모 지침서가 나오면 지침서에 따라 제안서를 영어로 제출하게 된다. 다만 에이전시가 필요하다. 개인으로 참여할 수는 없고, 국내 업체든 현지 업체든 에이전시가 있어야 출품이 가능하다.

 

쇼몽은 예술적이거나 도전적인 측면을 추구하지만, ‘설문대할망 정원’은 생활정원으로 방향성을 잡았다. 한국의 자연경관이나 민가의 생활상을 담은 우리만의 자연정원을 제시해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선정되는 결과를 낳았다.

 

제안서 평가가 이루어진 후 심사위원으로부터 당선 연락이 오면, 상세 설계도와 비용 등 정원 조성에 관한 상세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그렇게 최종 확정이 나면 쇼몽 측에서 대상지를 배정해주고, 2월부터 4월 중순 사이에 어느 날짜에 공사를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일정 조율이 시작된다. 여러 팀이 한꺼번에 공사를 하게 되면 혼잡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팀의 경우 대상지 현황을 직접 조사할 수 없으니 줌(Zoom) 등 온라인으로 편의를 제공한다. 그렇게 박정아·손경석 팀은 2주의 공사 기간을 잡고 출국했다.

 

쇼몽은 매년 같은 장소에서 열리기 때문에 지난해 정원을 철거하고, 새롭게 정원을 조성한다. 약 200㎡ 정도의 각각의 대상지는 수벽으로 구획돼 있고, 그 안에 정원을 조성하게 된다. 그래서 정원에 들어가면 아늑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제주의 자연을 표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식물은 너서리와의 계약을 통해 비슷한 식물로 수급했다. 주최측과의 대화를 통해 형태나 질감이 유사한 형태의 식물을 1차적으로 수급하고, 시공 중간에 2차 방문해 직접 식물을 구하기도 했다. 한국인과 프랑스인은 식물을 대하는 감성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 경관에 어울리는 식물을 직접 보고 구매하는 일이 필요했다고 한다.

 

곶자왈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현무암이 필요했는데, 프랑스에도 화산이 분출하는 지역이 있지만 크기가 큰 현무암은 구할 수가 없어 작은 크기의 현무암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바닥재는 색깔은 다르지만 마사를 섞어 표현했으며, 대청마루를 재해석한 평상은 유럽의 의자와는 다른 개념이기에 프랑스의 업체와 사전에 제작을 해두었다.

 

그렇게 본격적인 시공이 시작됐다. 주어진 대상지는 습지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경사가 져 있어 토양이 진흙수준이었다고. 심지어 프랑스의 날씨는 시공 2주간 비가 오는 날이 대부분이었고 이틀 정도 맑았다고 하니 식물을 심고 싶어도 발부터 푹푹 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토양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두 작가는 “작업이 힘든 환경이었지만 식물에게는 좋은 환경이었다. 시공시 수반의 물이 넘치지 않도록 배수 조치도 해두었기 때문에 궂은 날씨에도 정원이 유지될 수 있었다”며 웃었다.

 

정원시공과정/ DRA디자인그룹 제공


정원시공과정/ DRA디자인그룹 제공


정원시공과정/ DRA디자인그룹 제공


정원시공과정/ DRA디자인그룹 제공


정원시공과정/ DRA디자인그룹 제공


정원시공과정/ DRA디자인그룹 제공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두 작가는 최고의 시공팀과 일할 수 있었다고 소회했다. 

 

“젊은 팀이었는데 시공 기술이 훌륭했고, 무엇보다도 정말 성실했다. 본인들의 직업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해 진정성 있는 태도로 시공에 임하더라. 음악을 틀어놓고 노래하며 작업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외국인의 눈에도 이들이 즐기면서 일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팀과 일을 하게 되면 결과물이 좋을 수밖에 없다”

 

시공기간 몸은 고되지만 색다른 경험도 즐길 수 있다. 첫 번째는 숙식이다. 쇼몽 측은 쇼몽 성의 부속 건물들을 기숙사로 개조해 해마다 정원을 조성하러 쇼몽을 찾는 사람들에게 숙박을 제공한다. 식사 때가 되면 정원을 시공하는 여러 팀이 동그란 테이블에 앉아 함께 프랑스 가정식을 먹는다. 프랑스는 물론이고 미국, 네덜란드, 캐나다, 벨기에 등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은 식사를 하며 자연스럽게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된다. 정원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서로 다른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프랑스의 아름다운 경관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도 시공작업의 사이의 행복이다. 정해진 시공시간, 그리고 주말에는 작업을 할 수 없도록 제한하기 때문이다. 우선 정원축제가 열리는 쇼몽 성 자체가 아름다운 경관과 예술을 자랑하는 유적이며, 주말에는 성 주변의 지역으로 여행도 갈 수 있다. 두 작가와 한국 시공팀은 쇼몽 성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투르Tours 지역에서 1박을 하며 그곳의 식물원과 경관을 마음껏 즐기고 왔다고 한다.

 

 

자연에 충실하자

 

‘자연에 충실하자’. 이것이 두 작가가 정원을 대하는 태도이다. 기후변화로 점점 희석돼 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계절을 가지고 있기에 식물, 그리고 경관에서 다른나라와는 큰 다름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이들은 가장 한국적인 것은 ‘우리의 자연’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아름다움이 있는 쇼몽 성에서 한국정원의 한 단면을 소개할 수 있어 기쁘다. 정원을 찾는 사람들이 이번 가든페스티벌의 주제를 생각하며 마루에 앉아 사유하고, 치유되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좋겠다. 우리의 선조들이 자연을 바라보며 해왔던 생각들은 결국 자연과의 동화이고 공존하는 개념들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정원은 자연이다. 평이하고, 무난하며, 조화로운 정원이라 느끼길 바란다”

 

정원은 올해 11월 초까지 전시된 후 철거되지만, 두 작가는 이번 쇼몽을 계기로 해외에 우리나라의 정원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가며 한국정원의 디딤돌을 하나씩 놓을 계획이다.

 

쇼몽성 / DRA디자인그룹 제공 

 

쇼몽성 / DRA디자인그룹 제공

 

기숙사 / DRA디자인그룹 제공


 

기숙사 / DRA디자인그룹 제공

기숙사 / DRA디자인그룹 제공



제공되는 식사 / DRA디자인그룹 제공 

 

_ 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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