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행]두 기자와 떠나는 제주의 봄
김녕해수욕장, 돌문화공원, 용눈이오름두 남자, 정확히 말하면 두 조경매체의 기자가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이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우린 참 닮은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다르다. 생김새는 물론 성격도 판이하게 다르고 어떠한 사안에 온전히 의견일치를 본적도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기자는 휴가기간까지 맞춰가며 제주도 여행을 감행했다.
두 사람에게도 공통관심사는 있다. '조경과 사진'이다. 이러한 공동의 취미로 두 남자는 이번 여행 이전에도 제법 많은 곳을 함께 다니며, 서로의 사진을 품평하며 공유하였다.
환경과조경과 라펜트, 각각의 조경매체에서 활동하는 우리는 3월 중순, 2박3일의 일정으로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두 사람은 제주도의 이국적이고 수려한 자연경관을 머리 속에 떠올리며 카메라 렌즈를 연신 헝겊으로 문질렀다.
이번 한 주 동안 손석범(환경과조경), 나창호(라펜트) 기자의 제주도 여행기는 총 3회에 걸쳐 라펜트 조경뉴스에 게재될 예정이며, 사진을 중심으로 제주의 자연과 경관을 각각의 시선으로 소개할 계획이다.
제주의 봄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주는 유채꽃
김녕해수욕장(손석범 기자)
서둘러 이른 아침 비행기에 몸을 실은 건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아름다운 섬 제주를 돌아보는데 2박 3일이란 시간이 결코 길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출발부터 카메라가 말썽이다. 메모리 카드와 배터리 충전기를 챙겨오지 않아 제주 시내를 헤매다보니 어느덧 해가 중천이다. 아깝게 반나절이 훌쩍 지나고 점심 무렵에야 비로소 김녕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제주시에서 동쪽 성산포를 향해 30분쯤 달렸을까 어느새 도심을 빠져나와 작은 어촌 마을들이 이어진다. 창문 너머 간간히 보이는 야자수들이 따뜻한 햇살과 어울려 남국의 정취를 더해 준다. 땅위에선 벌써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이 어느새 성큼 다가와 있는 봄기운이 그저 반갑기만 하다.
눈부실 정도로 하얀 모래와 에메랄드빛 바다가 이국적인 정취를 물씬 풍기는 김녕해수욕장. 아마 검은 현무암 바위가 아니었다면 동남아시아 어딘가로 착각하지 않았을까?
표지판을 보고 주차장에 들어서니,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와우” 함성이 절로 나오고 만다. 눈이 부실 만큼 새 하얀 모래와 에메랄드 빛깔의 푸른 바다가 영락없는 남국의 바다 모습이다. 사진만 찍어다 동남아 어디쯤이라고 말한다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주저할 이유 없이 이내 바다로 몸을 맡긴다. 발끝에서 전해지는 고운 모래의 감촉은 보드랍기가 역시 상상이상이다. 여기에 맑고 투명한 물결이 시원한 미풍을 타고 잔잔히 밀려와 서서히 부서진다. 아직 차가운 감이 없지 않으나 살짝 발을 담가본다. 간지럽듯 살랑거리는 물결이 발끝에 와 닿는 느낌이 가히 나쁘지 않다. 이내 지친 일상의 마음은 시원한 바람 그리고 푸른 바다 물결에 마치 수채화 물감이 풀어지듯 눈과 마음이 시원해진다.
바람을 타고 밀려온 파도가 수줍은 듯 서서히 부서진다.
잔잔한 파도와 얕은 경사, 살짝 드러난 현무암 암반이 평온한 느낌을 준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바다를 좋아하는 내가 보는 제주도의 바다는 남과 북이 다르다. 태평양을 향해 있는 남쪽 해안은 중문 해변의 거센 파도를 떠올리면 알 수 있듯 물살이 세고 물빛 또한 짙고 푸르러 남성적인 강인함이 있다. 남쪽 해안을 따라 다수의 주상절리대가 분포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반면 육지를 바라보고 있는 북쪽 바다는 파도가 잔잔하고 물빛 또한 옅어 남쪽과 달리 여성적인 포근함이 느껴진다.
김녕해수욕장이 위치한 곳은 바로 북쪽. 조그마한 어촌의 포구를 끼고 있는 이곳은 사실 해수욕장이라고 하기에 살짝 민망할 만큼 작고 아담하다. 포구의 등대를 향해 살짝 원호를 그린 백사장이 그리 크지는 않지만 세상살이의 신음을 담아내기에 부족하지 않다. 마치 무엇이든 받아주시는 어머니 품 같은 푸근함이 느껴진다고 할까. 해수욕 철이 아닌 겨울 끝자락에 만난 김녕해수욕장이 더 아름다운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리라.
하지만 현재 김녕해수욕장이 아름다움만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얀 백사장의 모래 들이 해수면의 수위 변화로 현재 침식작용이 진행 중이다. 이국적이어서 보기에는 좋았지만 넓게 펼쳐진 에메랄드 빛깔의 바다는 사실 김녕해수욕장의 아픔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해안가 일부에만 있던 하얀 모래가 이미 먼 바다까지 쓸려 내려갔기 때문이다. 이미 백사장에는 유실을 방지하기 위해 포장이 씌워졌고 바람에 날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곳곳에 모래주머니들이 놓여 있다. 지구의 기온 변화가 이미 우리 가까이에 와 있는 것이다. 자연의 변화를 인위적으로 제어할 것인지, 설령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도 또한 바람직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급격한 변화를 또 한 번 목격한 것 같아 왠지 모를 씁쓸함이 서글픔으로 남는다.
에메랄드빛 바다에 환호를 지르는 것도 잠시. 이것이 지구 온난화 현상화 때문이라는 사실에 왠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진다.
백사장 유실을 막기 위해 포장을 씌우고 모래주머니를 얹어 놓았다.
바람과 파도가 만들어낸 흔적. 아무도 찾지 않는 이른 봄의 해변에는 바람과 파도만이 모래 위에 흔적을 남기고 간다.
제주돌문화공원(나창호 기자)
지난해 Jones & Jones사의 대표인 Grant Jones 씨와 인터뷰를 가질 기회가 있었다. 그가 필자에게 유독 강조했던 부분이 '한민족'이었다. 당시 그는 한국 특유의 생활양식을 가지고, 오랫동안 한 핏줄로 이어져 내려온 우리의 역사적 배경을 주목하였다.
우리가 '땅'을 기억하는 전세계 몇 안되는 민족(그가 말한 것은 인디언과 우리민족 뿐이다)이기 때문에, 그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또 존중해야 한다는 말도 부연했다. 존스 씨는 '그 장소가 과거에 어떠한 용도로 이용되었다면, 분명 거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강한 어조와 함께 인터뷰를 맺음했다.
그와의 인터뷰 도중, 라디오 방송에서 듣게되는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를 곰곰이 떠올렸다. 이어서 설화나 전설, 구전동요, 그리고 지역 방언을 차례로 생각했다. 기억을 거슬러 되짚는 방법을 연상하다 든 생각이었다. 스토리 말이다.
제주도 여행의 두 번째 목적지인 제주돌문화공원은 제주의 기억을 '돌'이라는 매개를 통해 총망라해 보여주고 있었다. 돌문화공원에서 제주의 전통 생활양식과 함께 설화와 이야기는 공간과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핵심요소다. 돌 하나를 통해, 제주도를 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제주의 탄생설화인 설문대할망 전설이 기본계획을 구성하는 핵심테마가 되었고, 제주도 토착민의 생활상이 드러나는 각종 민속품들로 공원이야기를 전개해 나간 것이다. 제주도 탄생에 전해 내려오는 설문대할망 전설의 일부를 소개한다.
"먼 옛날 설문대할망은 어느 날 망망대해 가운데 섬을 만들기로 마음을 먹고, 치마폭 가득 흙을 퍼 나르기 시작했다. 제주섬이 만들어지고, 산봉우리는 하늘에 닿을 듯 높아졌다. 산이 너무 높아 봉우리를 꺾어 던졌더니, 안덕면 사계리로 떨어져 산방산이 되었다. 은하수를 만질 수 있을 만큼 높다는 뜻에서 한라산(漢拏山)이라는 이름도 지어졌다. 흙을 계속 나르다 터진 치마 구멍으로 흘린 흙들이 여기저기에 쌓여 360여 개의 오름들이 생겨났다." |
하늘연못_전설에서는 설문대할망의 죽음을 두가지 형태로 전하고 있다. 하나는 자식을 위해 끓이던 '죽솥'에 빠져 죽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키가 큰 걸 자랑하다가 '물장오리'라는 연못에 빠져 죽었다는 것이다. 지극한 모성애와 인간적인 약점의 양면성을 함께 말해주는 이야기이다. 박물관 옥상에 설계된 하늘연못은 설문대할망 전설 속의 '죽솥'과 '물장오리'를 상징적으로 디자인한 원형무대이다. 지름 40m, 둘레 125m
이 용암석은 설문대할망이 사랑하는 아들을 안고 서있는 모습으로 벽에 비친 그림자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제주돌문화공원은 제주지질 체험, 생태탐사, 돌을 이용한 생활문화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제주의 신화와 역사, 도민의 삶을 뛰어나게 표현한 점, 민관사업의 취지를 잘 살려나가는 성공사례로 평가돼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A등급 평가를 받았다. 3,269.731m²(약 100만평) 너른 대지 위에 2020년에 완공시점을 잡아둔 미완의 공간이기도 하다. 2006년에 1단계 사업이 완료되었으며, 현재는 지속적인 보완작업을 하고 있다.
동영상 출처: 제주돌문화공원(http://www.jejustonepark.com/)
1코스부터 3코스까지 도보로 2시간이 넘는 제주돌문화공원을 내려오며, 손 기자에서 말을 건냈다.
"제주의 돌문화공원으로 관람객들이 제주의 돌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조경문화공원을 만들어서 조경을 이야기처럼 접하게끔 하는 건 어떨까요?"
"글쎄 공원을 조성하는 것이 조경이니까 따로 조경공원을 조성하는 것이 오히려 조경과 공원을 이원화 시키는 인식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대신에 조성되는 모든 공원마다 '조경'의 이름을 명확히 각인시키려는 노력은 필요하겠지"
짧은 시간내에 제주의 많은 풍광을 담아가자는 최초 우리의 목표와는 다르게, 제법 많은 시간을 이 곳에서 할애했다. 서로가 말은 안했지만, 많은 것을 보려고 했고 그만큼 찍고 싶은 것도 많았기 때문이리라.
용눈이오름을 향하는 길... 카메라에 찍힌 '제주돌문화공원'을 훑어보며, 마치 기승전결이 있는 한 권의 책을 읽은 듯한 뿌듯함을 느꼈다. 그리곤 수첩에 아래와 같이 기록하였다.
'기억과 이야기가 있는 공원은 감동을 줄 수 있다'
제주돌박물관_제주돌박물관이 세워진 부지는 1989년 12월부터 1999년 12월까지 10여년동안 생활쓰레기 매립장이었던 곳으로, 침출수가 발생하지 않는 장점을 최대한으로 살려 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게 되었다. 3000여평 규모의 제주돌박물관은 깊이 8m로 패여있던 낮은 구릉지를 이용하여 지하 2층에 수장고, 지하 1층에는 형성전시관과 자연석 전시관을 만드는 한편 옥상에는 야외무대를 설치하였다. 제주돌문화공원만의 특색있는 박물관 건립을 위해 건물 외벽은 도내에서는 처음으로 제주 현무암 골재를 사용한 노출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
제주의 무덤_제주도 무덤이 육지부와 구별되는 독특한 구조적 특징은 산담에서 볼 수 있다. 산담은 무덤 주위를 원형이나 타원형 혹은 장방형으로 쌓은 돌담으로 죽은 자의 영혼의 울타리로 인식된다. 원래 산담은 경작지와 무덤의 경계를 표시하거나 마소의 출입으로부터 무덤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울타리 형태로 쌓게 되었다.
제주 돌민속품_제주의 문화는 곧 돌문화이다. 과거 제주사람들은 자연석을 이용해 생활용구를 만들어 썼다. 종류만 270종에 이른다.
오백장군 갤러리
오백장군
용눈이오름(손석범 기자)
3월이라 해가 많이 길어졌다곤 하지만 어느새 해가 서쪽을 향해 있다. 다급해진 마음을 안고 돌문화공원을 빠져나와 서둘러 구좌읍 종달리 방면으로 내달린다. 제주의 속살들이 숨김없이 드러나는 중산간 도로를 달려 도착한 곳은 용눈이오름.
용눈이오름은 368개나 되는 제주의 수많은 오름 중에서도 차로 닿을 수 있고 누구나 쉽게 15분 정도면 가볍게 오를 수 있는 곳이어서 요즘 인기가 한창이다. 더욱이 제주의 아름다움에 반해 평생을 제주의 풍광을 담아온 사진작가 故 김영갑 선생의 주요 작품활동지로 알려지면서 많은 사진 애호가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용눈이오름의 전경_능선이 이루는 완만한 곡선은 제주도 내 그 어느 오름과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는 빼어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전체적인 생김새가 용이 누워있는 모양이라고도 하고, 산 한가운데가 크게 패어 있는 것이 용이 누웠던 자리 같다고도 하며, 위에서 내려다보면 화구의 모습이 마치 용의 눈처럼 보인다 하여 용눈이오름이라 불린다고.
차에서 내리니 이제 막 오르려는 사람, 벌써 올라갔다 내려온 사람들이 뒤섞인다. 가볍게 목인사를 나누고 성큼 발을 내딛는다. 어느 정도 올랐을까. 숨이 살짝 가쁠 무렵 뒤를 돌아보니 제주 오름의 제왕이라는 다랑쉬오름(월랑봉)과 아끈다랑쉬오름(작은 월랑봉) 그리고 종달리 해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와, 정말 좋다”고 감탄을 연발하지만 이 날은 연무에 가려 선명하지 못함이 못내 아쉽다.
용눈이오름으로 오르는 길. 그리 높지 않아 가볍게 걸어 15분 정도면 오를 수 있다.
제주오름의 제왕이라는 다랑쉬오름(좌)과 바로 옆 아끈다랑쉬오름(우)
조금 더 오르면 정상. 여기서부턴 살짝 경사가 제법이다. 하늘로 오르는 길일까 눈앞에 보이는 것은 오직 오름 등성과 파란 하늘뿐이다. 그렇게 정상에 오르면 또다시 감동의 물결에 젖어든다. 첫 번째 감동은 용눈이오름이 가진 능선의 아름다움이다. 분화구와 3개의 작은 봉우리가 이루는 완만한 곡선은 제주 오름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힌다고. 혹자는 이를 두고 아름다운 여인의 젖무덤 같다고 표현했다.
두 번째는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제주 중산간의 그림 같은 풍광이다. 한라산과 여러 오름들이 겹겹히 펼쳐지는 파노라믹한 뷰는 그야말로 이곳이 아니면 결코 볼 수 없는 장관이다. “아…이 맛에 오름에 올라오는구나.”라고 생각이 들지만 올라서 직접 올라 보기 전에는 쉽게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손에 닿을 듯 가까이 보인다는데, 이날은 쉬이 허락해 주지 않는다.
넓게 펼쳐진 억새밭 너머 멀리 종달리 해변이 보인다.
아끈다랑쉬오름
굼부리(분화구를 뜻하는 제주방언)와 봉우리가 이루는 곡선이 아름답다.
오름에 올라야 하는 이유는 제주의 바람과 중산간에서 내려다보는 그림 같은 풍광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리라. 날씨가 맑은 날이면 우도와 성산일출봉의 모습을 선명히 볼 수 있다.
수산리 풍력발전단지. 예로부터 바람이 많기로 유명한 제주 곳곳에 풍력발전소가 들어서고 있다.
정상에서 바라 본 다랑쉬오름의 위용이 대단하다.
내려가는 길, 곳곳에 검은 현무암으로 담이 둘러쳐진 제주식 묘가 눈에 들어온다. 김영갑 선생은 이를 두고 “제주 사람들은 들판에서 태어나 오름에 터전을 잡고 땅을 일구며, 죽어서는 오름 자락에 묻힌다.”고 표현했단다. 그러고 보니 오름은 신이 만들어낸 작품이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 제주 사람들과 삶과 함께해온 제주 사람들의 숨결이 담긴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제주도를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꼭 오름에 들려보길 권한다. 유명 관광지에서 맛볼 수 없는 제주의 참맛을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고 김영갑 선생이 말하듯 제주 사람들이 이곳에서 태어나 터전을 가꾸고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은 아마도 오름이 주는 넉넉함 때문이 아닐까.
- 손석범, 나창호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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